이명박 대통령은 108일 전 국민 다수의 환호 속에 거행된 취임식에서 이런 사태를 상상이라도 했을까. 어제 한승수 국무총리와 내각이 일괄 사의를 표명했다. 나흘 전에는 류우익 비서실장 이하 대통령실 수석비서관 전원이 사의를 표명했다. 정권 출범 3개월 남짓에 내각과 청와대 참모진 전원이 물러나겠다고 하는 초유의 기막힌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내각과 청와대 참모진이 후임 인선 때까지 맡은 임무를 계속한다지만 공직자들은 일손이 잡힐 리 없다. 여기에 서둘러 사표를 수리한 공기업과 국책연구기관의 장들의 후임 선정도 늦어져 공공부문 전체가 사실상 개점 휴업상태다. 정부의 역량을 총동원해도 모자랄 엄혹한 시기다. 국정공백 상태가 길어지지 않도록 내각과 청와대 개편을 신속하게 마쳐야 한다.
그렇다고 몇몇 장관과 청와대 참모만 바꾸는 땜질식 개편에 그친다면 성난 민심을 수습하기 어렵다. 원점에서 새 출발하는 각오로 전면 쇄신을 단행해야 하는 이유다. 인재의 풀도 개방해 이 대통령 주변의 베스트가 아닌 대한민국의 베스트를 발탁하기 바란다. 또다시 도덕적 하자가 있는 사람을 내세워 논란이 일거나 ‘강부자’ ‘고소영’ 인사를 한다면 정말 감당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무능한 쇠고기 협상 등 총체적인 국정 난맥상은 사람의 문제만이 아니라 잘못된 시스템에서 비롯된 측면도 큰 만큼 시스템 차원의 쇄신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국무총리의 위상과 역할을 최소한으로 제한하고 청와대에 국정조율 권한이 집중된 현행 시스템에서는 총리 자리에 어떤 사람을 앉혀도 달라질 게 별로 없다. 국무총리에 내각을 실질적으로 통할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 대통령과 국정의 책임을 나누도록 할 필요가 있다.
조직이 축소됐는데도 업무와 권한이 늘어난 청와대는 과부하로 기능 부전상태에 빠지거나 치명적 부작용을 초래했다. 국정난맥의 ‘원흉’으로 지목돼 물러난 박영준 기획조정비서관 파문도 따지고 보면 시스템 문제다.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다지만 비서관에 불과한 그에게 인사와 국정의 주요 사안이 집중됐으니 탈이 안 나면 오히려 이상하다. 청와대 사람들이 일에 치여 민심 동향을 모르는 문제도 드러났다. 이 대통령은 진정으로 국정쇄신을 원한다면 일개 기업을 경영하듯 국정을 얕잡아본 오만이 오늘 사태의 근원임을 깨닫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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