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불법승계 및 조세포탈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건희(66) 전 삼성그룹 회장에 대한 본격적인 재판이 12일 시작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 민병훈)는 이날 오후 1시30분 조준웅 특별검사가 기소한 이 전 회장 과 이학수(61) 전 부회장, 김인주(49) 전 사장 등 삼성 전ㆍ현직 경영진 8명에 대한 첫 공판을 연다. 앞서 재판부는 지난달 15일부터 5차례의 공판준비기일을 열어 이번 재판의 쟁점을 정리하고 증거조사 계획을 수립했다.
이번 재판의 관전 포인트는 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발행이 경영권 승계 목적이었는지, 이 전 회장에게 배임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 여부다. 특검 측은 1996년 말 이 전 회장과 이 전 부회장 등이 에버랜드 CB를 저가에 발행해 주주들이 실권토록 한 뒤 이를 ‘제3자 배정방식’으로 이재용 전무에게 넘겨 에버랜드에 최소 960억여원의 손해를 입힌 혐의가 있다며 기소했다.
그러나 변호인 측은 “에버랜드에 실제자금 조달 필요성이 있었고, 주주들도 자유로운 판단에 따라 실권했으며, 주주가 아니라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재판부는 “개인주주들의 실권 경위와 배정 방식이 핵심 쟁점”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CB 발행에 이 전 회장의 지시가 있었는지 ▲발행된 CB 인수권이 에버랜드 개인주주들에게 실제 부여됐는지 ▲주식 전환가격은 적정했는지 ▲이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당사자가 회사인지 개인주주들인지 등을 두고 팽팽한 법정 공방이 예상된다.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 발행 사건에서도 마찬가지로 ▲이 전 회장의 지시 여부 ▲BW 발행경위와 목적 ▦주식가치 산정 방법 등이 쟁점이 될 전망이다. 또 1,100억원대의 양도소득세 포탈 혐의에 대해선 정확한 포탈 액수 산정, 이 전 회장과 전략기획실 임원진의 공모 여부 등이 관건이다.
만약 에버랜드 CB 저가 발행에서 배임 혐의가 인정될 경우 배임의 규모가 50억원을 넘기 때문에 이 전 회장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이 적용돼 최고 무기징역형까지 선고받을 수 있다. 때문에 특검과 변호인 간 법리 다툼은 준비절차 때보다 한층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앞으로 4~5차례 공판을 더 열어 공소사실에 대한 증거조사를 마무리한 뒤 내달 중순께 선고를 내릴 방침이다.
■ 이건희, 나홀로 출두
이건희(66) 전 삼성그룹 회장이 12일 삼성 재판 첫 공판에 임직원이나 경호원 없이 '나홀로 출두'를 하기로 해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1일 삼성그룹 등에 따르면 이 전 회장은 12일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리는 재판에 변호사 1명만 대동할 예정이다. 삼성 특검팀의 소환 조사 때와 마찬가지로 특별한 수행 인원 없이 법정에 출석하는 것은 전적으로 이 전 회장의 뜻에 따른 결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회장이 '나홀로 출두'를 결정한 것은 경영권 불법 승계 등으로 여론의 따가운 질타를 받은 데 이어 형사재판을 받게 된 만큼 최대한 몸을 낮추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이 전 회장이 법정에 서는 것은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로 재판을 받은 1995년 이후 13년 만의 일이다. 그러나 당시는 대기업 총수들 가운데 1명에 불과했지만 이번에는 삼성을 직접 겨냥한 형사사건의 피고인이 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
삼성도 이 전 회장의 뜻에 따라 재판의 전 과정을 변호인에게 일임한 채 회사 차원의 대응은 일절 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 '조용한 재판'을 원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전 회장의 출석 과정에서 '만약의 불상사'가 발생할 가능성을 우려, 특검과 변호인은 10일 담당 재판부에 "사회적 관심이 큰 사안인 만큼 법정 안팎에서 소란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 질서유지 방안을 강구해 달라"고 요청했고, 재판부는 "법원 경호대에 뜻을 전달하겠다"고 답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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