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東京) 아키하바라(秋葉原) 대로에서 발생한 무차별 살인사건의 범행 동기가 드러나고 있다. 공부만 강요한 부모에 대한 불만, 터놓고 이야기할 친구도 애인도 없는 외로움, 하류인생이라는 패배감,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20대 비정규직의 불안… 일본 젊은이들이 안고 있는 고민을 모두 안고 있던 범인은 범행 당시 병적 심리상태에 놓여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0일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사건 직후 휴대폰 게시판 사이트에 범인 가토 도모히로(加藤智大ㆍ25)가 올린 것으로 보이는 글이 5월 중순 이후에만 3,000건 정도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범인은 자신의 심경이나 행동을 휴대폰을 이용해 실시간 기록하는 ‘리얼타임 블로거(Realtime Blogger)’였던 것으로 보인다.
“부모가 쓴 작문과 그림으로 상을 탔다. 무리하게 공부를 시켰다.” 범행 나흘 전인 4일 올린 게시판 글에는 공부를 강요 당한 중압감과 불만이 엿보인다. 고교 졸업 때까지 살았던 아오모리(靑森) 주변에서는 전업주부인 모친이 특히 아들 공부에 열심이었다고 한다. 중학교 때까지 전교 5등 안에 들 정도의 성적이 고교 진학 후 부진하자 부친에게 맞았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휴대폰 게시판 제목은 ‘친구 없고 애인 없는 무능력자 인권 없음’이었다. “모두 나를 피하고 있다” “애인이 있다면 직장을 그만 두는 일도, 야반도주하는 일도, 휴대폰 의존도 없었다”고 외로움을 토로했다. 이는 범행 전날 아침 렌터카 빌릴 돈을 마련하기 위해 게임소프트웨어를 팔러 갔던 아키하바라에서 “내 옆자리가 비었을 때는 앉지 않던 여자가 그 옆자리가 비자 앉았다. 확실히 나는 기피대상이다. 이런 취급 받으면 죽이고 싶어진다”는 적대감으로 바뀌었다.
아오모리에서 최고의 대학진학률을 자랑하는 고교를 졸업했지만 그는 4년제 대학을 가지 않고 좋아하는 자동차를 배울 수 있는 단과대학에 진학했다. 하지만 거기서도 진로 고민이 계속됐고 장래에 대한 불안은 커졌다. “고교 졸업하고 8년, 실패만 하는 인생” “어차피 나 같은 건 나이 들어도 단칸방에 독신생활이겠지”라며 자조하던 패배의식은 돌연 “성공하는 놈들은 모두 죽어 버려”라는 적대의식으로 변했다.
범행의 직접적인 계기는 직장인 시즈오카(靜岡) 자동차부품공장의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감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공장은 다음 달 말까지 200명인 비정규사원을 50명으로 줄이겠다는 계획을 지난 주 발표했다. “날마다 사람이 줄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며 불안해 하던 범인은 5일 출근 후 자신의 작업복이 없어진 것으로 잘못 알고 “그만 두라는 것으로 알았다”며 회사를 나갔다.
“파견사원으로 다른 공장에 가봐야 반년 지나면 또 잘리겠지”라며 체념한 범인은 “일본에는 범죄자 예비군이 얼마든지 있다는 기분이 든다”며 범행에 쓸 칼을 사고 트럭을 빌리는 등 준비에 나섰다.
도쿄=김범수 특파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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