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특검을 바라보면서 상도의(商道義)와 자본주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와 자본주의와는 사상과 역사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인가. 만일 그렇다면 서양같이 자본주의와 종교, 물질문명 등을 함께 고려해 운용한 경험이 부족해서인가. 그리고 '동양적 자본주의'라고 할 때 과연 우리는 일본식 모델인가 아니면 중국적인 자본주의에 더 친화하는 것인가.
‘상인’(商人)이라는 자본주의의 총체적 주체가 집약된 용어는 고대 갑골문으로 유명한 상(商) 왕조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다. 그 정도로 중국 사람은 옛날부터 상인 기질을 타고 난 것이다. 근대적 의미의 자본주의는 이제 시작 중이지만 벌써 세계가 주목할 정도로 저력을 보이고 있다. 중국 자본주의의 기원은 기원 전 594년 춘추시대 노(魯) 나라에서 설시했던 초세무(初稅畝)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개인 재산을 인정한 최초의 제도로, 공전(公田) 사전(私田)을 불문하고 10%를 과세했다.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세(稅)의 관념이 이미 그 당시에 나타난 것이다. 벼 ‘화’(禾)와 바꿀 ‘태’(兌)가 붙은 이 글자는 농경시대 자본의 생활화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지금 초세무를 기념하는 2600년제가 열리고 있다. 농민을 희생양으로 삼았던 중국 경제정책의 총체적 반성의 의미와 함께 자본주의로 회귀하는 의의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중국은 공산주의 정치체제를 시작하자마자 사유재산을 일시에 없애는 정책을 폈다. 1949년 적화 통일 후 최소한의 휴식기를 거쳐 1953년 시작된 사유재산의 국유화(중국 용어로 공유제, 전민소유제와 집체소유제의 두 가지가 위주이다) 작업은 불과 3년 만에 완성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정반대로 나가고 있다. 중국은 탄력성이 어지간한 나라이다. 민족성의 현실 적응력이 상당하다. 특히 그 중에서도 광둥(廣東)인이 최고이다. 모든 것을 장사 개념으로 본다. 그래서 덩샤오핑이 개혁, 개방의 전진 기지를 광둥으로 잡았는지도 모른다.
중국인은 아무리 적은 돈이라도 모으면 장사에 나선다. 가족이 달라붙어 이익이 안 남더라도 끝까지 버틴다. 그래서 기어코 성공하고 만다. 반면 한국인은 어지간한 이문이 남지 않으면 장사하지 않는다. 가족의 인건비를 따져 계속할지를 정한다.
내가 사는 전주는 좋은 동네이다. 음식도 그렇거니와 인심, 특히 상도의가 살아 있는 곳이다. H오토 자동차정비센터의 S사장은 모든 부품의 원가를 공개한다. 구하기 어려운 부품을 많은 시간 들여 구해 와 원가만 받는다. O MTB자전거상의 주인은 양심대로 산다고 말하고, 그대로 실천한다. 손님에게 자전거를 배달하고 부부는 나란히 손잡고 귀가한다.
그것이 사는 재미 아니냐고 부인은 웃는다. 남부시장에서 40년 가까운 세월을 보낸 M 옷수선사의 주인은 한 달에 하루 휴식을 고집한다. 거의 모든 생활을 고객의 요구에 최대한 맞춘다. 정확하게 손님에게 맞는 양말을 골라주고 저렴하게 값을 매기는 양말 리어카 주인, 처방전과 조금이라도 다른 약을 조제할 경우 일일이 의사에게 전화하여 확인하고 팩스로 리포트를 보내는 O약국 B약사 등 생활과 밀접한 우리의 '자본주의'가 싱싱하게 살아 숨 쉬고 있고, 이런 것들이 우리 생활을 편하게 만든다.
우리의 '자본주의 원형'(元/原型)은 과연 어떤 모습이고, 어떤 방향으로 계속 구축해 나가야 하는 것일까. 중국과의 교류가 크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중국인의 ‘상도의 개념’을 빨리 파악하는 것이 이런 질문에 답을 줄 수 있는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하지는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상옥 전주대 중국어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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