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보이지 않는다. 거리는 밤마다 촛불로 넘쳐 나는데, 그 민심을 담을 정치적 리더십은 보이지 않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권위는 추락하고 대의민주주의, 정당정치도 위기를 맞고 있다.
말은 무성하다. 정부 대책이 나오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말과 대책들은 쇠고기 정국의 본질을 관통하지 못하고 곁을 스치고 있을 뿐이다.
촛불 민심은 무엇인가. 우선 미국산 쇠고기의 안정성을 확보하라는 것이고, 그 저변에는 검역주권 포기로 상처받은 국민적, 국가적 자존심을 세워달라는 바람이 깔려 있다. 그리고 편중인사, 강부자 내각, 사정기관장 특정지역 독식에서 나타난 정권의 오만에 넌더리 내는 혐오와 절망도 거리의 민심에 섞여 있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해법은 미국 수출업자, 국내 수입업자가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거래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이른바 자율규제 방안이었다. 나름대로 노력한 결과였지만, 구속력이 담보되지 않은 자율규제를 ‘재협상에 준하는 결과’라는 정부의 강변에 동의할 국민은 그리 많지 않다.
또한 검역주권 포기에 따른 국민적 자존심의 상처는 자율규제로는 전혀 치유될 수 없다. 중국 국민들이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베이징 올림픽 개회식 불참 시사에 항의, 중국 내 까르프 매장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여 사과를 받아낸 것도 자존심의 문제였다. 그러나 정부는 국민적 자존심에 대해서는 인식조차 못하고 있는 듯 하다.
인적 쇄신도 그렇다. 청와대는 탕평 인사를 공언하고 있지만 국민들은 그 진정성에 여전히 의문부호를 달고 있다. 그 이유는 최근 이루어지고 있는 공공기관장 인사에서 이른바 MB맨들이 대거 진출했기 때문이다. 코레일, 주택공사, 토지공사, YTN, 아리랑 TV 사장에 대선 공신이거나 서울시 출신들이 내정됐다. 인사 기조를 진정으로 바꾸겠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 대목이다.
국회는 더 심각하다. 거리의 민심, 갈등을 국회로 끌어들여 해결하는 것이 대의정치의 기본인데 여야는 지금까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한나라당은 이 대통령과 정부에 온갖 어려움을 떠넘긴 채 재보선을 염두에 두고 이미지 관리에 치중한 측면이 있다.
통합민주당은 내내 촛불 뒤에 숨어서 어부지리를 얻으려는 태도로 일관했다. 여권의 지지도 추락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지지도가 15%대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 대안정당의 믿음을 국민에 주지 못하고 있는 반증이다. 여야 원내대표가 12일 회담을 갖기로 해 그나마 정치 복원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하나 이해가 엇갈려 결론은 여전히 안개 속이다.
어찌 보면 이 난국은 국민만이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미 엄청난 촛불로 민심을 보여준 이상 정치가 섬세한 해법을 마련할 시간을 주는 것도 필요하다. 대승적으로 인내하고 정치권이 국민이 준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그 때 다시 나서는 것이 성숙한 민주의식이라는 의견도 많다.
염영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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