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5, 6월 화물연대 파업의 후폭풍은 메가톤급이었다. 컨테이너 수송이 마비돼 납기일을 지키지 못한 수출ㆍ입 업자들은 발만 동동 굴렀고, 외국 선사들은 한국 항만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당시 세계 3위의 컨테이너 처리능력을 가진 부산항이 5위로 떨어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전국운수산업노조 화물연대의 총파업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파업 이유는 간단하다. 먹고 살기가 너무 힘드니 “치솟은 기름값을 내리고 운송료는 올려달라”는 것이다. 정부가 8일 기름값 추가 지원을 약속했지만, 화물연대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며 총파업을 강행할 태세여서 대규모 물류대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왜 파업인가
25톤 화물차량으로 서울~부산을 운항하는 김모(47)씨. 하루 수입(80만원)으로 치면 제법 큰 돈을 만지는 셈이다. 하지만 나가는 돈을 따져 보면 속 빈 강정이다. 왕복 기름값 60만8,000원(320ℓㆍℓ당 1,900원), 통행료 7만5,000원, 알선수수료 5만원, 지입료(소속 회사에 납부) 1만원, 바퀴 등 차량수리비 5만원, 보험료, 식사비…. 유가보조금 9만원을 받더라도 하루 수익ㆍ비용을 따져보면 ‘마이너스 인생’이다.
기름값이 ℓ당 1,400~1,500원 선일 때만 해도 근근이 버틸 수 있었는데, 지금은 차라리 화물차를 세워놓는 게 이득이다. 이렇다 보니 중고차 시장에서 7,000만원 하던 25톤 화물차량 가격이 최근 한 달 새 6,300만원까지 폭락했다.
차량 공급 과잉도 문제다. 차량등록제가 2003년까지 유지되면서 화물 수요에 비해 차량 공급이 지나치게 많았다. 결국 기름값은 10년간 4배 이상 올랐지만, 운송료는 제자리 걸음을 하는 상황이 지속된 것이다. 다행히 정부가 2004년부터 허가제로 바꿨지만, 여전히 공급이 많은 편이다. 교통연구원에 따르면 전체 화물차량 37만여대 중 2만여대가 초과 공급 수준이다. 화주-주선업체-알선업자-운송업체-지입차량(개인사업자)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운송체계도 문제다.
화물연대 박상현 법규부장은 “현재의 기름값, 운송료와 화물운송 관행 아래서는 화물차량이 영업하기 힘든 구조”라며 “빠른 시일 내에 확실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으면 물류대란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파업 손실은
화물연대 소속 차량은 전체 화물차량(37만여대)의 3.2%(1만2,000여대) 정도다. 하지만 컨테이너 차량이 많은 탓에 화물연대의 일일 컨테이너 수송량은 전체 물동량(3만1,000TEU)의 22.3%인 6,9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에 달한다.
2003년 두 차례(5, 6월)에 걸쳐 진행된 화물연대 파업이 사상 초유의 물류대란으로 이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1차 파업에서는 화물연대가 불법으로 항만 등 주요 시설을 봉쇄하면서 수출과 선박차질 피해액만 5억4,000만달러(국토부 기준)에 달했고, 2차 파업에서도 비화물연대에 대한 운송방해 등으로 6억300만달러의 피해가 초래됐다.
문제는 현 상황이 당시보다 더욱 나쁘다는 것. 국토부 관계자는 “2003년과는 달리, 지금은 고유가라는 공통 분모 탓에 화물연대 소속이 아닌 노동자들까지 파업에 합류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이미 피해는 가시화하고 있다. 9일 파업 결의가 시작된 이후 울산 현대자동차, 광주 삼성전자 등의 사업장에서 이미 운송거부가 시작됐다. 군산항과 평택ㆍ당진항에서도 부분 파업에 돌입했다. 특단의 대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전자 자동차 타이어 철강 등 산업계 전반으로 피해가 확산될 수 밖에 없다.
업계는 긴급 화물의 경우 자체적으로 미리 수송해 놓거나, 예비 차량을 확보해 놓는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파업이 2주일 이상 지속되면 물류대란이 재연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하루에 최대 10억달러 이상의 수출ㆍ입 물류 운송차질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정부 대책은
정부는 일단 화물연대 측의 3대 요구사항(기름값 인하ㆍ운송료 인상ㆍ표준요율제 시행)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기름값 인하의 경우 이미 고유가 대책에서 추가 보조를 약속했고, 운송료 인상은 정부가 직접 개입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닌데도 화주와 물류업계에 협조 요청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일부 사업장(LG전자 창원공장 15% 인상 합의)에서 운송료 인상이 가시화되고 있다.
또 최저임금제에 해당하는 표준요율제 도입 문제도 다소 늦어지긴 했지만, 이달 중 총리실 산하 위원회 구성을 통해 가급적 빠른 시일 내 법제화를 한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정부는 9일에 이어 10일 오후에도 화물연대 집행부와 협상을 진행하는 등 대화 채널을 열어두고 있다. 또 파업 강행에 대비해 ▦군 컨테이너 트럭 확보 ▦철도차량 증편 ▦예비 컨테이어 장치장 확보 ▦화물연대 비가입차량 확보 등 비상수송대책을 마련해 놓았다.
하지만 화물연대 파업이 민주노총(10~14일 파업 찬반투표), 건설노조(16~18일 파업), 플랜트건설노조(20~29일 파업 찬반투표) 등의 투쟁일정과 맞물려 있어 향후 사태가 얼마나 확대될지 예측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박기수 기자 bless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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