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자 소설가로 더 알려진 장정일을 극작가의 자리로 다시 호명하는 연극 <일월> 이 공연 중에 있다. 1987년 신춘문예 등단작 <실내극> 부터 시적이고 상징적인 극언어를 선보인 장정일이 <해바라기> 이래 근 십년 만에 발표하는 장막극인 셈이다. 문예지에 게재돼 ‘희곡문학’으로 남는가 아쉬움이 크더니 이번에 ‘극단 실험극장’이 무대 위로 불러냈다. 해바라기> 실내극> 일월>
연극 <일월> 은 사마천의 사기 너머 정사의 직필 아닌 상상력의 부드러운 붓으로 역사의 행간을 새로이 쓰려 한다. 극은 진시황의 맏아들 부소의 때이른 죽음의 이유를 묻고 아비와의 불화와 그로 인한 비극을 추적한다. 부소는 권력상속을 거부한 진시황의 명을 받고 변방으로 쫓겨 가 아비를 향한 인정투쟁 욕구를 장군 몽염에게 투사한다. 일월>
가부장적 권력에 대한 환멸 속에서 부소의 정신은 여성적인 것을 선택하고, 이 내면의 변화에 몸이 신비롭게 순응하면서 여자로 바뀐다. ‘거세된 수말 같은 삶’ 속에서 몽염은 아비에게 버림받은 부소에게 연민을 느끼고, 부소는 몽염의 고독을 엿보면서 둘의 공감은 육체적 합일까지 나아간다.
작가가 부소역을 여배우가 맡도록 희곡에 지시한 점은 효과적이었는가? 여성이 남성으로 분하고 다시 여성을 연기하는 ‘낯설게 하기’의 이중효과를 노렸던 것일까, 여성성과 남성성 각각을 변증법적으로 지양하는 야심찬 연기술의 주문이었던가.
‘남색’이라는 자칫 선정적으로 여길 소재에 대한 논란을 피할 수는 있었을지 몰라도, 주제 구현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듯하다.
가부장적 권력질서에 대한 좌절감이 타고난 성을 초극하려는 의지를 낳고, 도교적 선경으로 상승 이동하려는 한 남자의 굴절된 욕망의 비극적 선택 주제는 그만큼 모호해졌다. 차라리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현실권력에서 배제된 인간이 어떻게 시인 또는 예술가로 욕망을 옮겨가는가가 흥미롭다.
이 ‘비극’과 ‘초극’ 사이를 기록하는 무대 언어는 무엇보다 아름다워야 했다. 현실적 패배가 미학적 승리를 통해 구원될 수 있는 또 다른 주제를 울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연은 이 미적인 것의 구현에는 실패한다. 객석과 무대를 지근거리에 둔 너무 작은 극장조건은 애초에 미적 거리를 확보하지 못하게 만든다.
또한 젊은 연출가 김재엽은 ‘퓨전 사극’을 목표함으로써 아름다움이라는 초점을 비껴간다. 부소와 몽염을 둘러싼 대부분의 인물을 희화하고 ‘블랙리스트’, ‘쇼크’ 등 현대어를 뒤섞으며 코믹 무협의 한 장면을 시도하기도 한다.
토목공사를 좋아하는 진시황의 언급 등 오늘날 정치 풍자적 코드가 슬쩍 끼어들기도 하지만 이 작품에 정작 필요한 것은 시사적인 터치가 아니라 연극전반을 아름답게 세공하려는 미학적 야심이었을 것이다. 29일까지 김동수플레이 하우스.
극작ㆍ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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