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한 마음이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불교계에서 108만배를 한 스님으로 전설처럼 알려진 제주 약천사 회주 혜인(65) 스님이 출가생활 52년간의 수행담과 법문을 담아 <신심(信心)> , <원력(願力)> (클리어마인드)이란 책을 냈다. 원력(願力)> 신심(信心)>
불가에서는 절을 수행으로 하고 요즘은 일반인들도 운동 삼아 108배를 하지만 혜인 스님 만큼 절을 많이 한 스님도 드물 것이다. 그는 나이 서른을 앞둔 1971년 해인사 장경각에서 성철(1911~1993)스님의 지도로 200일 동안 108만배를 했다.
당시 성철 스님을 만나려면 장관이든 국회의원이든 누구든지 3,000배를 해야 했던 시절이었지만 108만배는 누구도 감히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절은 정성과 마음을 다해 해야 하는데 그때는 숫자에 너무 집착했던 것 같습니다." 책 출간을 맞아 9일 서울로 올라온 스님은 당시를 회고하면서 "이제는 숫자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108배를 매일 아침 정성을 다해 한다"고 말했다.
오척 단구 어디에서 그렇게 큰 힘이 솟아났을까. 책에는 그 고행의 과정이 별다른 자랑이 아니라는 듯 간략하게 소개돼있다. 중간중간에 코피가 엄청나게 쏟아져 코피를 삼키고 말리면서 했고, 무릎에 고름이 잔뜩 들었지만 무시하고 하다 보니 없어졌다고 한다. 처음에는 하루에 3,000배씩 하다가 익숙해지면서 차츰 숫자를 늘려 4,000배, 5,000배씩 했다고 한다.
혜인 스님은 108만배 이후 삶에 큰 변화를 느끼면서 설법을 하는 법사로 출가자의 삶을 살았다. 감동을 주는 스님의 법문이 널리 알려지다 보니 한 달에 보름 정도는 전국과 세계 곳곳을 다니며 초청법문을 한다.
지금까지 비행기를 탄 것만도 2,000회가 넘을 정도라고 한다. 스님은 96년 서귀포시 중문단지에 제주 최대의 사찰인 약천사를 지었다. 약천사 대웅전은 2,000명 이상이 들어가는 규모다. "제주도가 국제관광지인데 큰 법당이 없었어요. 절도 교회처럼 수 천명이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는 법당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지요."
요즘 많은 사찰들이 정부 지원금을 받아 불사를 하지만 약천사는 정부에서 한푼도 받지 않고 신도들의 시주만으로 지었다고 한다. 지금 약천사는 매일 관광버스 80대가 들릴 정도로 제주의 명소가 됐다.
혜인 스님의 법문은 스승 일타(1929~1999) 스님처럼 어렵지 않다.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인가?" 이런 물음에 스님은 "남 기분 나쁘지 않게 사는 것"이라고 했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고 하지만, 오는 말이 험해도 가는 말이 고와야 합니다. 상대가 누구든 친절하십시오."
스님은 사찰생활에서도 친절을 강조해 약천사에 오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루는 밥과 잠자리가 공짜다. 스님은 "'불교는 친절한 마음'이라고 한 달라이라마의 말에 공감한다"고 했다.
행복한 삶에 대해 스님은 "질병 취업 재산 자녀문제 등 어려운 문제가 많지만 '얼음이 많으면 물이 많고, 얼음이 적으면 물도 적다'고 한 일타 스님의 말처럼 원력을 세우고 포기하지 않는 삶의 자세를 가지면 행복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고 했다.
"항상 마르지 않는 샘처럼 좌절하지 말고, 꿈과 희망을 갖고 사는 사람이 원력을 갖는 사람입니다." 수행에 대해 스님은 "50여년의 출가생활을 통해 느낀 것은 출ㆍ재가를 막론하고 너무 도통(道通)하려고 하지말고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면서 사람의 도리를 강조했다.
책 제목처럼 신심과 원력의 삶을 살아온 혜인 스님은 2002년 말부터 충북 단양 도락산 64만평 부지에 약천사의 두 배 규모로 광덕사를 짓고 있다. 대웅전 주변에 108동의 건물을 지어 앞으로 5, 6년 뒤에 '사해일가 세계일화(四海一家 世界一花)'의 가르침대로 108개국에서 온 불자들이 함께 사는 도량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
남경욱 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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