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분양 한파에 시달리던 건설업계에 이명박 정부의 등장은 구세주와도 같았다. 건설업체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이 대통령이 대운하 건설 등 개발 드라이브를 걸 것이라는 기대감 탓이었다. 하지만 겨울이 곧 지나갈 것이라는 꿈이 결국 희망사항으로 끝나면서, 건설업계가 공멸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정권이 바뀌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으로 버텨왔는데, 솔직히 지금은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 기분이다.”
부도 위기에 몰린 서울의 중소건설업체 사장 한모(55)씨의 하소연이다. 지난해 말 대통령선거 당시만 해도 새해에는 살림이 피어날 것이라는 그의 기대는 남달랐다. 불합리한 규제 철폐와 부동산 세부담 완화, 그리고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토목공사(대운하 프로젝트)까지 약속한 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소망은 5개월 만에 ‘일장춘몽’으로 끝날 위기에 놓였다.
건설업계가 느끼는 이명박 정부 출범 100일간의 체감 경기는 그야말로 최악이다. 대운하 사업의 타당성 검토를 건설업계에 맡기는 파격적인 행보와 재건축시장 규제 완화설이 흘러나왔을 때만 해도 호시절을 눈앞에 두는 듯 했다.
하지만 주택 규제 완화와 부동산 세금 축소는 가시화되지 않았고, 대운하 사업은 하천정비사업으로 축소되더니 정치적 논쟁에 휩싸이며 논의조차 사라졌다. 여기에 건설 원자재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어려운 경영 여건을 더욱 압박하고 있다. 때문에 “건설경기가 참여정부 시절보다 못하다”는 불만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실제 건설업계의 불황은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건설산업연구원이 지난달 내놓은 건설기업 체감경기 지수는 49.3으로, 2006년 8월(37.8) 이후 1년9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특히 대형업체 지수는 72.7로 상대적으로 견고했지만, 중견 및 중소업체는 각각 39.3, 33.3에 불과했다.
미분양 주택과 부도업체 수도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있다. 국토해양부 자료에 따르면 3월 말 현재 전국의 미분양아파트는 13만1,757가구로 1996년 2월(13만5,386가구)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또 올 들어 5월 말까지 부도난 건설사는 모두 144곳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98곳)에 비해 47%나 급증했다.
더욱이 건설 원자재값의 고공 행진으로 공사를 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고 있다. 지난해 초 톤당 46만원(고장력 10㎜기준·공장도 가격)이던 철근값은 올 들어 95만1,000원으로 2배나 급등했다. 그나마 철근을 구하지 못해 공사를 중단하는 작업장이 속출하는 실정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지방 미분양 주택 해소 등 국지적 대책 뿐 아니라 종합적인 부동산 대책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중소업체들을 중심으로 부도 기업이 기하급수로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송태희기자 bigsmil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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