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이 '권력 사유화'의 핵심 당사자로 지목한 청와대 박영준 기획조정비서관이 9일 오후 결국 사표를 제출했다. 박 비서관의 전격적인 사표 제출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가 결정타가 됐다.
의총에서 정두언 의원은 다시 공개적으로 박 비서관 등에 대한 비난을 날렸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상당수 의원들이 정 의원의 비판에 공감한다는 발언을 했다. 이 소식은 즉시 청와대에 전달됐다. 일각에서 "정 의원이 부적절한 시기에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는 비난도 내놓았지만 대세는 정 의원 쪽이었다.
이는 의원들이 정 의원을 추종해서가 아니라 그가 말하는 인사 전횡, 즉 "박 비서관과 그 뒤를 받치는 이상득 의원을 통하지 않고는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없다"는 시중의 얘기들에 동의했기 때문이었다. 사실여부를 떠나 한나라당 의원들조차 이런 인식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박 비서관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엄청난 부담을 주게 될 것이라는 판단이 내려진 것이다.
이 대통령은 고심 끝에 이날 오후 류우익 대통령실장에게 박 비서관의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의사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핵심 측근인 박 비서관의 사표 제출은 고육지책의 외길 수순이었던 셈이다. 지난 주말 한나라당 정태근 권택기 의원 등이 청와대를 방문, 박 비서관의 퇴진을 건의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비서관의 사퇴는 그것으로만 그치는 게 아니라 청와대와 내각의 전면 쇄신을 예고한다. 이 대통령이 측근인 박 비서관을 물러나게 할 정도라면 상황을 심상치 않게 보고 있으며 그 해법 역시 미봉책에 머물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유임론이 우세했던 한승수 총리의 거취도 유동적인 상황이 됐다고 볼 수 있다.
이에 앞서 정 의원은 의총에서 "인사실패가 무능과 부도덕 인사로 이어져 결국 국정실패까지 초래했는데도 인사실패를 초래한 사람들이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며 "그러면 결국 대통령이 책임지라는 얘기밖에 더 되느냐"고 개탄했다. 그는 "그들이 또다시 인사쇄신까지 주도하는 상황이 됐다"며 "이래서는 쇄신이 될 리 없고 국정실패가 되풀이되지 않겠느냐"고 우려했다.
그는 "권력투쟁으로 몰고 가는 세력이 있는데 옛날 같으면 제가 사약도 받을 일"이라며 "제가 자리에 연연한다면 이런 일까지 하겠느냐"고 반박했다. 다만 그는 "방법상 잘못은 시인하며 그 점에 대해서 대통령과 당에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 의원의 발언에 정몽준 최고위원은 "진솔한 얘기로 보인다"고 했고, 허태열 의원도 "다 알지 않느냐는 게 전체적 분위기였다"고 말하는 등 공감하는 의원들이 많았다. 한 초선 의원은 "정 의원의 충정에 120% 공감하며 총리와 대통령실장의 교체 없는 인적쇄신은 옳지 않다는 말도 나왔다"고 전했다. 김정권 원내 공보부대표는 의총 브리핑에서 "정 의원의 충정을 다수 의원들이 이해하고 뜻을 같이 한 것으로 이해해도 된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에 반발, 정 의원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대세를 바꾸지는 못했다.
염영남 기자 고성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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