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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또 하나의 명예혁명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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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또 하나의 명예혁명을 위해

입력
2008.06.10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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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온 국민의 시선이 시청 앞 광장에 가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로 촉발된 촛불집회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이 문제를 슬기롭게 풀지 못하면 이명박 정부는 5년 내내 허둥대다 끝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쇠고기 문제로 이렇게 일이 꼬인 데 대해 이미 대통령은 국민과 소통하는 데 문제가 있었음을 솔직하게 인정했다. 사실 정부와 여당은 쇠고기 문제에 대해 국민과 소통다운 소통을 시도한 적이 없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조속히 체결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쇠고기 쯤은 어느 정도 양보해도 된다는 생각으로 그냥 밀어붙이고자 했다. 국민은 그런 안이한 오만을 결코 좌시하지 않았다.

민주의 기초 닦은 21년 전 시위

사실 청와대의 오만은 쇠고기 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른바 ‘강부자’ ‘고소영’으로 요직을 채우고 국민 대다수가 부담스러워 하는 대운하 사업을 밀실에서 음모하고 있는 데서 이 정부의 오만을 재확인할 수 있다. 소통을 외면한 그런 오만에 대해 지금 국민이 준엄하게 심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소통의 실패는 청와대에만 그 책임을 돌릴 문제가 아니다. 정당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 소통의 실패를 예비하고 있었음을 지나쳐서는 안 된다. 정치란 타협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에 타협이 실종된 지 오래다.

여당과 야당은 상대방을 타협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상종할 수 없는, 사라져야 할 정치집단처럼 상대방을 불신한다. 여당이 보는 야당은 친북 용공세력일 뿐이고 야당의 눈에 비친 여당은 파쇼잔재 보수꼴통에 지나지 않는다. 군부독재 시절의 그런 이분법적 사고가 정치를 지배하는 한 소통은 늘 공염불일 수밖에 없다.

소통의 부재에 대해 정치권 탓만 할 수는 없다. 사회에서 바람직한 공론을 창출하여 국민을 통합할 책무가 있는 언론은 혐오스런 정파성의 늪에서 좀처럼 빠져 나오지 않고 있다. 자기 정파의 잘못은 바늘처럼 가벼이 여기고 다른 정파의 오류는 몽둥이인 양 키운다. 제3자의 위치에서 정치를 감시하는 언론 본연의 자세는 잊은 지 오래다.

우리 언론은 관전자나 심판이 아니다. 걸핏하면 여야 선수들까지 운동장에서 밀어내고 언론끼리 패가 갈려 백병전을 치른다. 언론을 통해 자유로이 의견을 교환하게 하면 예정된 방향으로 모든 것이 자동 조절된다는 자유주의의 기본 가정은 정파저널리즘이 판을 치는 상황에서 제대로 작동할 리가 없다.

정치나 언론이 정파성에 함몰되어 있는 데는 지식인도 책임을 느껴야 한다. 한 세기 전에 미국에서 뉴욕타임스가 객관보도 원칙으로 저널리즘의 새로운 좌표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은 뉴욕에 거주하는, 정파적으로 중립적인 지적 공중(公衆) 덕분이었다. 지적 공중이 지적 권위지를 키운 것이다.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품격 있는 지적 권위지를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은 우리 사회에 지적 공중의 층이 두텁지 않음을 방증한다.

물론 인터넷을 통해 대중이 여론 형성의 주체로 등장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인터넷 공간이 그리스시대의 광장(agora)을 되살리고 있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런 직접민주주의의 도구나 장(場)은 민주정치가 역동성을 갖게 할 것이다.

지금의 초점은 민주적 소통구조

그러나 직접민주주의는 언론이나 정당을 통한 간접 민주주의와 금상첨화(錦上添花)의 관계에 있을 때 진가를 드러낸다. 간접민주주의의 다양한 제도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직접민주주의 장치가 필요 이상으로 기승을 부리면 나라꼴이 격을 갖추기 어렵다.

촛불 앞에서 대통령만 반성할 일이 아니다. 정치인들, 언론인들, 그리고 지식인들이 제각기 자기의 허물을 크게 느낄 때 비로소 소통 구조가 바로잡히고 정치가 선진화할 것이다. 1987년 6월의 가두시위가 민주주의의 기초를 닦은 것이었다면 올 6월의 촛불시위는 민주적 소통구조를 정착시키는 또 하나의 명예혁명으로 귀착해야 한다.

김민환 고려대 언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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