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가 40일 이상 지속되고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촛불집회의 양상은 과거와 전혀 다른 새로운 형태의 시민참여형 집회ㆍ시위 문화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거대한 도심 축제를 즐기듯 가족, 연인, 친구들과 어울려 노래를 부르며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하는 집회ㆍ시위 참가자들에게서 과거 바로 그 장소에 서있던 시위대의 긴장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은 촛불집회를 탄생시키고 견인해온 이슈가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 문제라는, 남녀노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주제이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일 것이다. 그래서 사회학자인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촛불집회를 과거 ‘제도정치 투쟁적 성격’의 시위와 대비되는 ‘생활정치적 성격’의 시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흐르고 6ㆍ10 민주화운동 21주년(10일), 효순ㆍ미선양 6주기(13일), 남북공동선언 8주년(15일) 등이 다가오면서 촛불집회의 성격과 내용도 조금씩 변하는 느낌이다. 중고생, 일반시민 위주였던 촛불집회에는 진보ㆍ개혁 진영의 대다수 시민사회단체와 노동단체, 대학생 조직, 심지어 정치권 인사들까지 대거 가세했다.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 문제라는 본질은 초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축소되고, 정권 퇴진 등과 같은 반정부 구호가 더 크게 들리는 것도 이들의 참여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등록금 인상 문제와 같은 국민생활 밀착형 이슈로 이명박 정부와 대치점을 이루던 진보ㆍ개혁 진영은 촛불집회로 분출된 시민사회의 동력을 바탕으로 그 존재감을 극대화하려 하고 있고, 그동안 정치투쟁으로 비난 받아온 노동계도 반정부 분위기를 하투(夏鬪)까지 연결시키려는 움직임이다.
야당도 어찌됐든 촛불집회로 정국 주도권을 쥐며 반사이익을 얻으려 한다. 그러니 서울광장을 연일 뜨겁게 태우고 있는 촛불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꺼질 것인지를 예측하기란 더 어려워졌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에 천착하는 시민들이 정부에 ‘미국과의 재협상’만 요구하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문제는 역풍(逆風)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개방에 반대하면서도 촛불집회와 가두시위에는 참여하지 않는 다수 시민들의 여론이 어떻게 형성되고 나타날 것이냐가 촛불의 운명을 가를 수 있다는 얘기다. 벌써 역풍 태동의 단초처럼 보이는 징조들은 나타나고 있다. 한미 양국 정상은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출입 규제에 합의했고, 정부는 여전히 미흡하다는 평가 속에서도 서민 생활고 해결을 위한 10조원 규모의 세금환급 등 고유가 극복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청와대는 내각과 비서진을 교체하는 인적 쇄신안을 준비 중이다. 이런 가운데 거리시위에서 쇠파이프와 각목이 등장했다. 불과 150여명이 왕복 10차선 도로를 점거한 채 온종일 도심 교통 흐름을 차단했다. 매일 밤마다 시청앞 서울광장과 청와대로 통하는 세종로, 종로, 안국동 등 서울 도심은 해방구가 되고, 시민 불편과 피해는 갈수록 가중되고 있다.
사실상 촛불집회를 주도하는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은 이런 현상들이 지속될 경우를 가정해 봐야 한다. 자칫 촛불집회의 순수한 목적과 배경은 슬그머니 사라진 채 더 이상의 촛불집회에 대한 대중의 염증이나 피로감, 불만이 고조되는 상황 말이다. 그런 순간이 다가오기 전에 촛불집회는 가장 현실적이고도 현명한 사태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
국회를 신속히 개원, 국회의원과 각계각층 대표자들이 모여 몇날 며칠을 새워서라도 난상토론을 하며 쇠고기 협상 과정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현실적 해결방안을 찾는 일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촛불집회가 문제 제기와 확산의 수단은 될 수 있지만 사태 해결의 현실적, 궁극적 수단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황상진 사회부장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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