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최고 권위의 계간 문예지 NRF(La Nouvelle Revue Francaiseㆍ프랑스 신비평)는 올해 봄호(4월호)ㆍ여름호(6월호)에 걸쳐 ‘한국문학 특집’을 마련, 1960년대 이후 발표된 한국 시ㆍ소설 30편을 소개했다.
작가 생년순으로 소설가 황순원(1915~2000)부터 김용택(60) 시인까지 14명의 작품이 봄호에 실렸고, 최근 현지 발간된 여름호엔 소설가 김훈(60)씨부터 김애란(28)씨까지 16명의 작품이 다뤄졌다.
이에 맞춰 NRF 편집장 미셸 브로도(62)씨가 한국문학번역원 초청으로 2일 방한했다. 99년부터 편집장으로 재직 중인 브로도씨는 유력 일간지 르몽드의 문학 담당 기자이자 소설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국내엔 장편 <원숭이 해석> 이 번역돼 있다. 브로도씨는 5일 서울 한 음식점에서 이번 특집호에 작품이 수록된 소설가 윤흥길(66), 이인성(55), 은희경(49)씨를 만나 문학을 포함한 문화 전반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원숭이>
브로도=특집에 실린 은희경씨의 장편 <비밀과 거짓말> 발췌분을 인상깊게 읽었다. 작품 구도가 영화적이었고, 캐릭터 중 영화 제작 관계자가 나오기도 한다. 한국 영화 수준이 세계적인 만큼 문학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한 것 같다. 비밀과>
은희경=문학과 영화가 경쟁 장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표현 방식이 다를 뿐 인간과 사회를 탐구한다는 콘텐츠를 공유한다.
브로도=주제에 구별이 없다는 것은 동의한다. 하지만 소설은 그것을 단어로 표현하고, 영화는 관객이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영상으로 표현한다. 전달 도구가 다르다보면 작가의 상상력이나 수용자에게 사뭇 다른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은희경=그렇다고 한국의 어떤 작가처럼 ‘나는 절대 영화화될 수 없는 소설을 쓰겠다’는 식의 지나친 자의식 혹은 대결의식을 가질 필욘 없다. 문학이 영상문화에 독자를 잃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향유할 문화가 다양화졌다는 의미이지 문학의 가치가 추락했다는 뜻은 아니니까.
이인성=그 어떤 작가가 나다(웃음).
브로도=<비밀과 거짓말> 에서 주인공 소녀는 할아버지 무덤에 걸터앉고 그 앞에서 웃고 얘기하는 삼촌들을 보며 당혹해 한다. 이 장면은 망자에 대한 예의라는 전통을 잃어가는 세태에 대한 비판인가. 비밀과>
은희경=죽음을 받아들이는 한국인의 정서가 그처럼 초월적이란 점을 표현하고 싶었다. 70, 80년대까지도 한국사회엔 죽음까지 심상히 받아들이는 넉넉함이 있었다. 내 어린 시절을 반영한 소설이기도 한데, 부정하려 했으나 결국 회귀하게 되는 한국 전통적 포용성을 말하려 했다.
윤흥길=한국인들은 죽음을 친구처럼 여기는 전통이 있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으레 좋은 나무로 관을 짜고, 좋은 땅에 묘지터를 잡고, 좋은 삼베를 구해 수의를 마련해 두고자 한다.
브로도=우리 모두 결국 죽음을 맞이할 것이므로 죽음 앞에서 지나치게 슬퍼할 필요 없다는 자각은 프랑스에도 있다. 1885년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타계했을 때 사람들은 휴가를 내고 장례식에 참석할 만큼 큰 장례가 치러졌다.
창녀들은 무료로 ‘봉사’하겠다고 나섰고 점잔빼던 부르주아 여성들도 남성들의 요구에 적극 응했다. 그래서 위고 장례식이 있은지 9개월 후 베이비붐이 일었다(웃음). 윤흥길씨 작품은 딸 예니씨가 직접 번역했다고 들었다.
윤흥길=프랑스 유학 후 현재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을 다니며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딸이 작품을 번역해주니 아버지로선 그 이상의 기쁨이 없다.
브로도=이인성씨는 두 분과는 전혀 다른 경향의 작품을 쓴다.
이인성=내가 영화화 할 수 없는 글을 쓰겠다고 했을 땐, 영화를 무시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언어만이 할 수 있는 최대치를 추구해보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개인적으론 순수한 언어공간이라 부를 만한 것을 구축해 보고 싶다.
브로도=번역은커녕 읽기도 어렵다는 랭보의 시가 사회당 슬로건이나 화장품 광고에도 쓰이는 시대다. 자본주의가 문화예술을 끌어들여 자기 이익에 적용시키는 능력이 엄청남을 새삼 확인하는 요즘이다.
이인성=맞다. 자본주의에 끝없이 문화가 먹혀간다. 하지만 먹히는 매순간 벗어나려는 모험조차 포기해선 안될 것 같다.
글ㆍ사진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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