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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 기술과 매체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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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 기술과 매체의 정치

입력
2008.06.09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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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촛불이 꺼지지 않고 있다. 여고생들까지 나서서 살아 있는 정치교육을 받고 있다. 그 결과 한나라당이 6ㆍ4 재ㆍ보궐선거에서 참패하고 말았다. 이 모두를 보고 있노라면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대선과 총선처럼 개혁과 진보진영이 지나치게 몰락하고 한나라당이 독주를 해 보수와 진보 간의 균형이 깨어지면 안 된다는 속 깊은 배려에서 의도적으로 악수를 두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까지 하게 한다.

공기관 능가하는 시민동영상

며칠 전 촛불시위를 밤 늦게까지 따라다니면서 발견한 것은 이번 시위에서 등장한 인터넷 텔레비전이라는 새로운 매체이다. 물대포 앞에 버티고 서 있는 하이힐 신은 여학생과 전경의 방패에 찍혀 필사적으로 전경차 밑으로 기어들어가는 여학생. 이 같은 충격적인 장면들은 1인이 컴퓨터와 마이크 하나만 가지고 운영하는 인터넷 텔레비전, 그리고 국민 대부분이 갖고 있는 디카 폰을 통해 네티즌의 안방으로 전달되어 이번 촛불시위의 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사실 이 같은 새로운 기술과 매체 덕분에 여학생을 방패로 찍은 문제의 전경을 동영상 분석을 통해 신원을 밝혀내서 만든 지명수배 전단까지 등장했다. 그리고 문제의 전경이 처벌을 받게 됐다. 지금까지 시위현장에는 시위의 주동자들이나 폭력시위자들을 가려내려는 경찰의 비디오 촬영기만이 존재했다. 그러나 이제 시위자를 색출하려는 경찰의 동영상을 수백 배 능가하는 시민 동영상이 등장한 것이다. 이처럼 디카 폰과 인터넷 텔레비전의 등장으로 우리의 사회운동, 나아가 우리 사회는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과 매체의 등장이 엄청나게 새로운 현상인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 우리의 역사, 나아가 세계사는 줄곧 새로운 기술과 매체의 등장으로 운동양식 나아가 사회자체가 변화해 온 역사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슬람 근본주의의 효시인 1970년대 말 이란혁명이다. 샤라는 서구적 왕정을 무너뜨리고 호메이니가 이끄는 이슬람 신정체제를 현대사회에 부활시킨 이 혁명은 ‘카세트혁명’이다. 샤의 압제에도 불구하고 망명지인 프랑스에서 이슬람혁명을 선동하는 호메이니의 강론 카세트 테이프가 비밀리에 국내로 반입되어 유포되면서 혁명의 동력을 만들어낸 것이다. 사실, 거슬러 올라가자면 금속활자에 의한 책의 대량생산도 지식의 대중화를 통해 대중적 사회운동의 기반을 제공했다.

우리도 매 한가지다. 1970년대 후반, 1980년대의 민주화운동은 복사기의 보급에 힘입은 ‘복사기 운동’이었다. 복사기가 보급되면서 소위 ‘불온한 사상’을 유포하는 국내외 금서들을 복사해 학습하고 운동권이 성장했기 때문이다. 2002년 대선도 신기술인 인터넷이 처음으로 승패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인터넷 선거’였다. 효순 미선이라는 두 여중생이 미군 탱크에 치여 죽자 한 네티즌이 촛불시위를 제안해 네티즌들이 모이기 시작해 거대한 물결을 이루었다.

또 진보적인 인터넷 언론들이 선거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하다못해 노동파업도 신기술의 영향을 받았다. ‘휴대폰시위’가 나타난 것이다. 노무현 정부 초기 한 국영기업이 파업을 하면서 서울 도심으로 뛰쳐나왔는데 노동자들이 수많은 소집단으로 나누어 배회하다가 지도부가 문자로 시간과 장소를 알려주면 순식간에 모여 시위를 하곤 흩어지는 게릴라식 시위로 경찰의 애를 먹였다.

어떤 정치색 채우느냐가 문제

그러나 보수세력 역시 2002년 패배를 거울삼아 인터넷 대응에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여 열세를 만회한 바 있다. 즉 인터넷과 같은 기술이 그 자체가 민주적이라거나 진보적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잘못이다. 다만 기술과 매체가 그 자체로 민주적이거나 진보적이지는 않더라도 정치적인 것만은 확실하다. 따라서 문제는 그 정치성을 어느 쪽으로 채우느냐는 것이다.

손호철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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