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제 지음/문학동네 발행ㆍ340쪽ㆍ1만2,000원
“사진은 언제나 조작의 결과물이 될 수밖에 없다.” “내 조작의 셔터는 농담이다.”
‘작가의 말’에서 따온 두 문장은 소설가 성석제(48ㆍ사진)씨의 여섯 번째 산문집이 ‘농담으로 포착한 신변잡사(雜事)와 풍경’임을 일러준다. 렌즈나 필터가 농담이라면 뭘 찍어도 ‘농담 따먹기’가 될텐데 셔터가 농담이라 했으니 피사체의 본모습을 왜곡하지 않으면서 유쾌한 장면들을 골라 찍겠다는 얘기다. 기록 자체가 조작의 운명을 벗을 순 없지만, 하여 한바탕 농담의 기록을 남기겠지만, 그래도 사물과 풍경의 본질을 포착하려는 열망은 떨구지 않겠다는.
책은 3부로 구성됐다. 1부는 작가의 성장기 에피소드, 2부는 국내외 여행에서 만난 사람과 풍경, 3부는 주변 잡사에 대한 관찰과 단상으로 꾸며져 있다. 작가 특유의 의뭉스러운 듯 단단한 문장이 어슬렁어슬렁 농담을 꾸려간다. 카메라로 따지면 셔터 연사 대신 노출을 길게 가져가는 셈이다. 절대 흥분하지도 웃지도 않는, 호흡이 긴 만담꾼을 앞에 둔 듯 독자는 빼문 웃음을 좀체 거둘 수가 없다.
‘성석제 카메라’는 망원렌즈를 즐겨 쓴다. 다종한 요소들을 한꺼번에 부리는 광각렌즈식 유머는 구사하지 않는다. 엉뚱한 듯 집요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일테면 동요 <반짝반짝 작은 별> 원곡이 뭘까, 동네 과일가게 진열대 위 ‘과일의 황제 앨버트 복숭아!’란 문구 속 앨버트가 누굴까 궁금해 하며 농담의 포문을 연다. 반짝반짝>
‘문자중독’임을 자백하며 관광지 안내판, 버스 부착물 등의 문구를 한자씩 뜯어보던 중 기상천외한 농담을 발굴하기도 한다. 아들과 현충원 매점에 마주앉아 컵라면 익기를 기다리다가 길어낸 이야기가 압권이다. “…희망소매가격이 적혀 있었다. 값은 700원. 그것을 읽는 순간 아버지의 눈이 커졌다. …희망을 소매한다니? 언제부터 희망이 도매금, 소매가격으로 팔 정도로 흔해졌는가? 그리고 그게 겨우 700원?”(183쪽) 등산ㆍ바둑ㆍ자전거 타기 애호가이자 식도락가, 소음을 못 견뎌하는 예민한 귀의 소유자로서 작가가 풀어놓는 이야기 보따리도 재밌다.
되풀이하자면 작가의 농담은 목적 아닌 수단에 가까운 것이어서 전하려는 메시지를 망실하지 않는다. 실팍한 풍자나 야유는 없지만, 하고픈 말은 따박따박 하고야 만다. 그래서 ‘성석제 카메라’가 만들어낸 사진은 추상 아닌 구상이다. 농담 셔터로 찍은 구상 사진엔 웃음 넘어 단단한 미감이 있다. 그 피사체가 추억(1부)이면 생생한 아련함이, 낯선 풍경(2부)이면 질박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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