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서민들의 고유가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무려 10조원을 푼다. 사상 초유의 '세금 환급(Tax Rebate)'이다. 순수 현금 지원 금액만 7조원이 넘는다. 세수 감소, 부유층 혜택 집중 등 상당한 부작용이 우려되는 유류세 일괄 인하 대신, 서민들에게 직접 현금을 나눠주는 고육책을 짜낸 셈이다. 정부는 소비 진작 등 경기부양 효과도 기대하는 눈치다.
"지금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데 상당 부분 공감하지만, 막대한 현금 살포 규모에 비해 그 효과는 미미해 보인다. '서민층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게 한다'는 원칙에 치중하다 보니, 지원 대상이 무려 2,000만명에 육박한다. 결국 서민 1인당 지급액이 최고 월 2만원, 연간 24만원에 불과하다. 승용차에 두세 번 주유하면 끝이다. 그래서 "10조원이 별다른 효과도 보지 못한 채 공중분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8일 고위 당정협의에서 확정ㆍ발표한 '고유가 극복 민생종합대책'은 유류세 인하 등 일괄 지원 방식이 아닌 서민층 선별 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소득 근로자(연봉 3,600만원 이하)와 자영업자(종합근로소득 2,400만원 이하)에 연간 6만~24만원의 소득세를 환급해주고 ▦화물차 버스 등 사업용 차량과 농어민에 경유값이 ℓ당 1,800원을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 50%를 추가 지원하며 ▦기초생활수급자 가구에 연간 24만원의 유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총 소요액이 10조4,390억원에 달한다.
전문가들의 평가는 비교적 긍정적이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재정의 경기 조절 능력을 활용한 것이 방향 면에서 맞다고 본다"고 했고, 임경묵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도 "유류세를 직접 인하할 경우 상대 가격에 영향을 줘 경제 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세금 환급이 더 바람직해 보인다"고 말했다.
문제는 돈에 꼬리표가 없다는 점이다. 유류 환급금이라지만, 어차피 1년에 두 차례 계좌에 현금이 12만원씩 들어오면 그저 '공돈'일 뿐이다. 서민들 입장에선 유류비 부담과 별개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많다는 뜻이다. 개개인으로는 지원 금액이 미미해서, 체감조차 쉽지 않을 수 있다. 차라리 형평성 논란을 감수하고 지원 대상을 더 줄이는 대신, 지원액을 늘리는 것이 효과면에선 더 낫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촛불시위 무마용'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정부가 현금을 풀어 미국산 쇠고기로 성난 민심을 달래려는 포퓰리즘 정책의 전형이 아니냐는 것이다. 경기부양에는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치솟는 물가에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절차적으로는 18대 국회 원 구성을 거부하고 있는 야당의 동의를 어떻게 이끌어내느냐가 관건이다.
무엇보다 이번 대책이 전 세계적인 고유가에 따른 일회성 조치이고 보면, 고유가 체제에 대응할 수 있는 근본 대책이 절실하다. 이날 발표한 장기 에너지 기반 확대, 에너지 절약 기반 확충 등의 중ㆍ장기 대책이 구색 갖추기에 그쳐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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