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고기 정국의 와중에 정치권에선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안’이 논란거리로 등장했다. 표면상으로는 18대 국회 개원을 둘러싼 여야간 힘겨루기의 대상이지만, 내용상으로는 국회가 정부의 쇠고기 재협상을 강제할 것인지에 대한 이견이 내포돼 있다.
개정안 처리 여부가 쟁점으로 부각된 직접적인 이유는 가축전염병예방법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장관 고시의 모법(母法)이기 때문이다. 고시가 관보에 게재돼 법적 효력을 갖기 전에 국민적 요구에 따라 법을 개정, 정부가 재협상에 나서도록 하겠다는 게 야권과 시민사회단체의 생각이다.
실제로 야3당이 발의했거나 발의를 준비중인 개정안은 관보 게재를 앞두고 있는 고시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들이 들어 있다. 수입 대상부위의 경우 통합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은 각각 30개월령 미만, 20개월령 미만의 뼈 없는 살코기로 한정하는 안을 마련했다. 광우병 위험성이 높은 30개월령 이상 쇠고기는 원천적으로 수입할 수 없게 명문화하겠다는 것이다. 양당은 공히 수출국에서 광우병 발생시 수입 전면금지, 수입위생조건에 대한 국회 동의 등도 규정했다. 민노당은 한발 더 나아가 동물성 사료 금지, 수출국 육류작업장 승인권 등도 포함시켰다.
이처럼 개정안의 골자는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재협상 요구안으로 제시한 내용을 상당 부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법안이 개정되면 현재 관보 게재를 앞두고 있는 고시 내용이 모법을 위반한 결과가 되는 만큼 정부로서는 재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야권은 개정안 처리를 등원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 한나라당이 뒤늦게 채택에 동의한 재협상 촉구 결의안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만큼 이것만 믿고 등원했다가 정부 여당이 재협상을 거부할 경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큰 것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법 개정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법 체계상 문제도 있고 국제법적으로 발효된 협약을 국내법으로 제한하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이는 정부가 30개월령 이상 소가 국내에 들어오지 않도록 미국 축산업계와 국내 수입업계의 자율결의를 추진하고 있고, 이 방안이 성사되면 사실상 광우병 노출 위험이 해소될 텐데 굳이 통상마찰 우려를 감수하면서까지 법안을 개정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얘기다.
물론 여기엔 한나라당이 법안 처리에 가세할 경우 결과적으로 정부에게 재협상을 압박하는 모양새가 된다는 부담도 깔려 있다. 조윤선 대변인이 “30개월령 이상 쇠고기가 수입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며 재협상이든 추가 협의든 그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개정안 처리를 둘러싼 여야간 이견은 정부로 하여금 재협상에 나서도록 국회가 강제할 것이냐에 대한 입장 차이라 볼 수 있다. 야권은 촛불민심을 반영해 법안을 개정하자는 입장인 반면 한나라당은 정부 조치가 실효를 거둘 수 있도록 불필요한 자극 요인을 만들지 말자는 것이다.
양정대 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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