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영국 이스트 런던 도서관. 구조나 건물 모양 등이 여느 도서관과 다를 바 없지만 이날은 책을 읽거나 빌리기 위해 방문한 사람들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날만큼은 도서관이 책이 아닌 사람을 빌려주었기 때문이다.
좀 특이한 발상이지만 이처럼 책 대신 사람을 빌려주는 이른바 ‘리빙(living) 라이브러리’가 유럽에서 운영되고 있다고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CSM)가 4일 보도했다.
리빙 라이브러리는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편견을 교정하려는 사회운동 또는 그런 공간을 말하는데 덴마크 출신 비폭력 운동가 로니 애버겔이 창안했다. 리빙 라이브러리에서 접할 수 있는 것이 책이 아니라 무슬림, 성 전환자, 주술사 등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는 소수자들이다. 도서관에서 대출 신청을 하면 책 대신 이들 소수자가 나와 30분간 대화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그들에게 궁금한 점을 묻거나 그들의 삶의 태도를 경청할 수 있다. 에버겔은 “대화를 통해 편견을 극복하고 이해와 관용을 정착시키는 게 리빙 라이브러리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이스트 런던 도서관에서는 르완다 출신의 한 난민은 자신이 영국 재정을 갉아먹고 일자리를 빼앗는 존재가 아니라고 강조했으며 다른 성 전환자는 생물학적 성을 강요받아야 하는 고통을 이야기했다.
리빙 라이브러리를 통해 만나고 싶은 사람에 대한 선호도는 국가별로 차이가 난다. 영국에서는 무슬림과 전직 폭력단원과의 대화를 선호하지만 성 전환자와의 대화는 신청이 적다. 헝가리에서는 신나치주의자를 선호하지만 경찰, 성 전환자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낮다.
리빙 라이브러리를 방문한 사람들은 “편협한 시각을 교정하고 균형 있게 세상을 볼 수 있어 교육적”이라며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리빙 라이브러리는 대화를 통해 편견을 극복하려는 일종의 브레인스토밍 프로그램으로 2000년 시작돼 2005년부터는 사회단체의 재정지원을 받는 본격적인 사회운동으로 전개되고 있다. 현재 영국 뿐 아니라 독일 덴마크 터키 등 12개국에서 운영 중이며 향후 미국에서도 대학을 중심으로 전개될 예정이다.
김회경 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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