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5일)가 망종(芒種)이었다. 24절기 중 9번째로, ‘씨앗을 뿌리느라 경황이 없는 시기’라는 뜻이다. 화장실에 갈 짬이 없어 ‘발등에 오줌을 싼다’는 우스개도 있고, ‘비오고 천둥 치면 농사를 망친다’는 속담도 있다. 그런데 3, 4, 5일 사흘 내내 비가 잦았고 천둥도 쳤다. 때아닌 ‘장맛비’로 예보가 어려워진 기상청이 기분 좋을 리 없다.
그래서인지 장기 예보는 자제하겠다고 했다. 특히 “장마가 소멸됐다(그러니 놀러 가도 좋다)”는 예보는 아예 안 하기로 했다. 작년엔 장마 종료를 선언한 뒤에 ‘장맛비’가 더 많이 내려 망신을 당했다.
■파종에 가장 좋다는 때에 장맛비가 내리니, 우리나라 거의 전역이 이미 아열대기후에 들어가 버렸다는 진단이 무성하다. 교과서적으로 한반도는 4계절이 뚜렷한 온대기후의 전형이다. 제주도와 부산~목포의 남해안 지역만 아열대기후로 돼 있다. 세계적 기준(쾨펜ㆍ트레와사 분류법)에 따라 아열대기후는 8개월 이상 평균기온이 10도를 넘어야 하는데, 한반도는 7개월(4~10월)이어서 아직은 온대기후라는 게 기상청의 설명이다. 기후란 기온의 개념만 아니라, 강수량과 식생분포도 중요한 요소니 아직 아열대기후가 아니라는 것이다.
■겨울이면 심심찮게 닥치는 혹한과 폭설 덕분(?)에 국제 기준에서 한반도는 아직은 살기 좋은 온대기후에 속한 게 맞다. 아열대기후의 또 다른 기준은 가장 추운 달의 평균기온이 18도 이하이면서 땅이 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인데, 우리의 겨울은 꽁꽁 어는 시기가 많다. 결국 ‘긴 여름, 따뜻한 겨울’이다. 1930년대 이후 70여년 동안 여름(하루 평균기온 20도 이상)은 20일 가까이 늘었고, 겨울(5도 이하)은 한 달 정도 줄었다. 또 1910년대부터 1990년대 사이 지구의 연평균 기온은 0.6도 상승했으나 우리나라만 유독 1.5도나 올랐다.
■ 온대기후와 아열대기후의 또 다른 차이는 장마와 우기(雨期)에 있다. 장마와 함께 여름이 시작되고 무더위와 땡볕이 이어지는 게 온대기후의 전형이다. 아열대기후 지역에선 3~6개월 동안 걸핏하면 비가 오는데, 나머지 기간엔 강수량이 거의 없다. 지난해와 달리 올해에는 장마 시작을 경고도 하기 전에 철모르는 ‘장맛비’가 내렸다. 그래서 기상청은 장마 대신 우기 개념을 사용할 궁리를 하는 모양이다. 온대기후로 분류된 곳에 ‘아열대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는 얘기다. 지구 온난화가 뭔지, 기후는 물론 인간 삶의 변화가 걱정스럽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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