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문학계 최대 논쟁 거리로 떠올랐던 ‘한국문학 위기론’은 2006년 4월 국내 소개된 일본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의 저서 <근대문학의 종언> 이 도화선이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의 번역자이자 문학평론가인 조영일(35)씨는 논쟁 구도의 한 극점에 자리하면서 한국문학 및 문단제도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펼치고 있다. 근대문학의>
작년 <너머> 등 신생 문예지에, 올해는 <오늘의 문예비평> 여름호와 곧 발간될 <작가와 비평> 제8호에 조씨는 ‘한국문학 낙관론’을 생산하는 ‘주류 문단’을 향해 정교한 공격을 가하는 비평을 연이어 실었다. 작가와> 오늘의> 너머>
그의 글은 인터넷 문예 사이트 중 가장 수준 높은 담론이 형성되는 곳으로 잘 알려진 ‘비평고원’(cafe.daum.net/9876)에서도 만날 수 있는데, ‘소조’라는 아이디를 쓰는 사이트 운영자가 바로 그다.
6일 서강대 인근에서 조씨를 만나 한국문학에 대한 그의 문제의식을 들어봤다. 전남대 국문과를 거쳐 서강대 박사과정을 수료한 그는 현재 한국 근대 초기소설에 관한 논문을 준비 중이다. 이번 주엔 자신이 기획위원을 맡고 있는 ‘도서출판b’를 통해 가라타니의 책 <역사와 반복> 을 번역 출간한다. 역사와>
조씨는 먼저 가라타니의 종언론이 근대문학(소설)에 한정된 것임을 강조했다. “(근대)문학이란 말은 18세기에 생겼다. 물론 이전에도 읽을거리로서 이야기는 늘 있었다. 다만 그것이 근대민족국가 성립에 기여하면서 특별한 중요성을 부여받았는데 이제 그 시효가 다했다는 것이 가라타니의 요지다. 여기에 대고 ‘유사 이래 늘 있어왔던 문학이 어떻게 사라질 수 있느냐’고 하는 건 초점이 안맞는 비판이다.”
근대문학이 소멸하는 만큼 그것을 뒷받침하던 근대적 문학제도도 재편돼야 할 텐데 한국문단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조씨의 근본적 인식이다. 여기서 뻗어가는 여러 갈래의 비판적 논의 대상 중 하나가 문예지 시스템이다. 현재 주요 문예지들이 비평가 중심의 편집위원 체제로 운영되는 만큼, 문예지 비판은 곧 비평가에 대한 공격이다.
조씨는 한국 문예지의 기원은 당파성을 공유하는 동인지인데, 요즘 주요 문예지 간엔 뚜렷한 문학적 입장차가 없기 때문에 해체돼도 무방하다고 본다. 그런데도 비평가들이 문예지 모태가 되는 출판사의 (상업적) 이해와 결탁, 문예지를 통해 담론을 만들거나 작가를 ‘과대 포장’하는 등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조씨의 대안은 구미ㆍ일본처럼 작가 관리부터 작품 출간까지의 일체를 출판사 편집자가 맡아서 작가-독자가 시장에서 직접 소통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 그리고 비평가들은 복잡한 이해가 얽힌 작품 해설 위주의 단평에서 벗어나 자기 이론과 사상을 온전히 보여줄 ‘장편 비평’ 생산에 전념, 독자적 입지를 구축해야 한다고 그는 제언한다.
조씨는 문학에 대한 국가 지원제도 역시 문제 삼았다. 그는 “현재 시행되고 있는 작가 지원금제는 노무현 정부를 상대로 당시 황석영 민예총 회장-현기영 문예진흥원장이 얻어낸 성과”라면서 “비주류를 본령으로 삼아야 할 문학이 정치적 긴장감을 잃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국가 지원금 수혜 여부가 작가로서의 능력을 따지는 은근한 잣대가 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가난을 문학적 열정으로 뚫어야 할 상황으로 자연스레 받아들였던 근대소설가들과 달리, 오늘날은 가난이 무능력의 징표로 통용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한국문학 위기’ 돌파 방안으로 제시된 장편소설 활성화 주장엔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주요 논자들이 실천 방안으로 단편 지원금 전용(轉用)을 제시한 점은 문학 종속성 심화의 또다른 사례라고 지적했다.
글ㆍ사진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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