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북한에 옥수수 5만t을 지원하기 위해 3주 전 적십자사를 통해 남북 접촉을 제의했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다고 한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등에 따르면 1990년대 대기근에 버금가는 식량난에 직면했다는 북한이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저러는지 언뜻 의아하다.
전문가 사이에도 미국의 식량 50만t 지원은 선뜻 받아들인 북한이 이른바 통미봉남(通美封南) 술책을 쓴다는 의구심과, 우리 정부의 대북 자세가 애초 옹색했다는 지적이 엇갈린다.
여러 자료를 종합하면 북한의 식량 부족은 90년대 수준은 아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심각한 듯하다. 수요에 비해 120만~160만t이 모자란다는 추정이다. 여기에 외부 식량지원이 크게 줄고 국제 곡물가격이 폭등, 자칫 대량 아사 사태가 재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반론도 적지 않다. 비록 제한적이나마 시장이 형성돼 중간계층 이상은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데다, 일반 주민도 과거 경험에 따라 식량을 비축해 대규모 기근은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외부 지원을 노리고 생산량을 속인다는 시각도 있고, 심지어 일부 탈북자 출신과 보수 언론은 북한이 지원 식량을 군량미로 쓰거나 지배층만 배 불릴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처럼 엇갈린 논란 속에 최근 북한을 찾은 전문가들은 “주민들은 수척해진 반면, 도로 건물 공장 등은 외국 자본이 들어와 속속 새로 단장하거나 짓고 있다”고 전한다. 상호주의와 조건부 지원을 앞세운 우리 정부에 고개 숙이지 않기로 작심한 듯한 북한이 믿는 구석이 무엇인지 헤아리는 데 참고할 만하다.
대북 식량지원은 무엇보다 동포애와 인도주의에 입각해야 한다. 그러나 북ㆍ미 관계변화 등과 얽혀 돌아가는 사정은 우리만 애초 무리하게 설정한 틀에 얽매여 인도적 명분은 물론이고 남북관계 진전 기회마저 놓칠 것을 걱정하게 한다. 이런 마당에 북한을 나무라며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데 매달리거나 새삼 억지 논리로 발목을 잡는 것은 정부의 고민을 깊게 할 뿐이다. 넓게 열린 마음과 안목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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