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경영’만이 살길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 경영 활동의 주요 과제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은 올해 1월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포럼에서 “기업이 사회적 이슈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며 오늘날 기업들이 추구하는 비즈니스와‘나눔 경영’이 결합된‘창조적 자본주의’를 주창했다.
빌 게이츠의 언급이 아니더라도, 기업들의 사회공헌 활동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 조건이 됐다. 단순한 기부 활동을 뛰어넘어 고객과 지역사회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기업의 유ㆍ무형 자산을 활용하는 단계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이는 사회공헌 활동이 기업가치를 높이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확산된 탓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기업들의 ‘나눔 경영’은 지출이 아닌 투자인 셈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이 2006년 사회공헌 활동에 지출한 돈은 1조8,048억원으로 전년(1조4,025억원)에 비해 28.7%나 늘어났다. 국내 기업의 CSR 지출 비중은 매출액 대비 평균 0.3% 수준으로, 일본 기업(0.13%)보다 높았다.
올해 3월 주요 대기업 총수들이 참여하는 전경련 회장단은 투자와 고용 활성화라는 기업 본연의 책임은 물론 사회적 책임도 성실히 수행하겠다는 내용의 ‘CSR결의문’을 채택했다.
각 기업은 사내에 ‘사회적책임위원회’를 설치하고, 사회공헌 실천방안을 마련해 실행에 옮기고 있다. 존경 받는 기업이 되기 위해선 사회 공동체와 동일한 문제의식을 갖고 그에 걸맞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나눔 경영’의 콘텐츠도 다양화하고 있다. 단순한 이미지 개선이나 홍보 차원의 사회공헌 만으론 사회문제 해결이나 기업 경영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CSR 비전이나 핵심가치를 새롭게 정립하고, 사회 이슈에서 발생하는 위험과 기회요인을 파악하는 내부 프로세스를 갖추기 위해 주력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고유 역량과 이해 관계자들과의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나눔 경영’을 위한 필요 조건이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사회 구성원들이 염려하고 있는 사회 문제나 지구적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해결방안을 내놓는 기업들에게 더 많은 역할과 성장기회가 주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사회공헌 활동을 열심히 하는 기업의 주가는 그렇지 못한 기업보다 상대적으로 높게 형성되고 있다. ‘나눔 경영’에 집중하는 기업은 좋은 평판을 얻을 확률이 높고 기업을 위태롭게 할 스캔들에 휘말릴 가능성도 적다.
자본시장에선 ‘사회책임투자 펀드’가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종교단체나 공적 연금을 중심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에만 투자하는 펀드다. 아직 시장 내 비중은 크지 않지만, 앞으로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고객들의 윤리의식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에 대한 호감 증대로 나타나고 있다. CSR 활동은 임직원들이 회사에 대한 자부심이나 충성심을 높이는 계기도 된다.
조동성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기업이 단지 기부만 하거나 관련 부서를 만들어 사업을 집행하는 수준을 넘어 사회공헌 철학을 기업의 경영철학과 일치시키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며 “20세기를 대표하던 ‘돈 많이 버는 기업’대신 21세기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존경 받는 기업’이 새 모델로 각광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 "더 비싸도 나눔 경영 잘하는 기업 제품 구매" 89%
우리나라 국민들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이행 노력과 그 성과를 제품 구매와 취업 등의 의사 결정에 적극 반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LG경제연구원이 최근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기업 CSR과 관련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국민 대다수는 기업의 '나눔 경영'에 대해 선진국 못지않게 높은 관심을 보였다.
조사에 따르면 CSR 이행과 관련, '반드시 해야 한다'(77.4%) '여력이 있으면 해야 한다'(22.5%)는 응답이 99.9%에 달했다. 또 전체의 98.7%는 '기업이 나눔 경영을 통해 이득을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구체적 이득으론 ▦기업 이미지 개선(66.8%) ▦매출 증가 (11.2%) ▦직원 애사심 증대(8.4%) ▦우수 인재 채용(5.9%) ▦우수 협력업체와 거래(3.1%) ▦자금조달 여건 개선(2.5%) ▦규제 당국과의 마찰 감소 (1.9%) 등을 꼽았다.
가장 좋은 CSR 이행 방법으론 '질 높은 제품 공급, 고용 창출 등 경제적 책임 이행'(36.3%)을 꼽았고, 이어 '경영 활동을 통해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26.4%), '자선단체 기부, 소외계층 지원 등 사회공헌 활동'(20.9%), '법 준수, 성실한 조세납부 등 법적 의무 이행'(16.4%) 등의 순이었다.
구체적인 CSR 활동으론 ▦저소득층, 노인, 장애인 등 사회취약 계층 지원(17.0%) ▦법 준수와 투명경영(16.1%) ▦고용 창출과 직원복지 증진(15.8%) ▦좋은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12.7%) ▦안전한 제품 개발과 소비자 권익보호(11.9%) 등을 꼽았다.
특히 소비자나 근로자 입장에서 기업의 '나눔 경영'을 바라보는 시각도 매우 적극적이었다. 전체 응답자의 88.7%는 '제품 품질이 같다면 나눔 경영을 상대적으로 잘 실천하는 기업의 제품을 더 비싼 가격으로도 구입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 '나눔 경영' 4대 조건
1. 사회적 책임에 대한 뚜렷한 비전
기업의 비전이나 핵심가치가 사회적 책임과 부합해야 한다. 단순한 이미지 제고와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사회적 책임 활동은 일시적 장식품에 그치기 쉽다. 진정한 사회적 책임 활동을 위해선 자신의 비즈니스만이 아니라 사회적 영향을 고려해 때론 손해를 볼 각오도 해야 한다. 기업의 목적 자체를 사회적 책임 관점에서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2. 냉철한 자기 진단 프로세스
기업 비전에 사회적 책임을 명시하고 목표로 제시한다 해도 일상의 비즈니스 프로세스에 반영되지 않는다면 현장에선 실질적인 '나눔 경영'이 이뤄지지 않는다. 때문에 이를 반영하고 확인하는 자기진단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일종의 건강검진과 같은 셈이다. 하루하루가 전쟁인 비즈니스 현장에서 정기적으로 자기진단을 통해 '나눔 경영'에 대한 성과를 측정해야 한다.
3. 사회 문제 해결할 수 있는 역량
'나눔 경영'이 단순한 자선사업을 넘어 기업 경영의 중요한 일부로 자리매김하려면 사회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역량이 있는 기업들에겐 실제 CSR이 중요한 성장엔진을 제공한다. 제너럴일렉트릭(GE)은 기업의 사업 특성과 역량을 활용, 사회적 책임을 성장기회로 삼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으로 꼽힌다.
4.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확보
기업이 아무리 '나눔 경영'에 주력하더라도 언제나 완벽할 수는 없다. 사회의 요구 수준이 항상 변화하기 때문에 기업들은 이를 뒤 쫓기에 급급하다. 시민단체와 NGO들의 표적이 되기 일쑤다. 따라서 사회적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고 어떤 대응전략을 세워 이를 추진해야 할지를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항상 점검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이해 관계자들과의 소통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고객과 종업원, 투자자, 협력업체, 구매업체, 시민단체 등 기업의 주요 이해 관계자들과 끊임없는 '소통'을 이뤄야 한다.
장학만 기자 loca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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