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불교역사기념관서 14일 '욕망' 화두로 학술연찬회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불교역사기념관서 14일 '욕망' 화두로 학술연찬회

입력
2008.06.09 00:54
0 0

“명리도 영화도 돌아보지 말자/ 인연 따라 이 한 생을 보낼 뿐이다/ 누더기 한 벌로 기워 입고 또 입고/ 빈 쌀독 두드리며 노래 부른다/ 허깨비 같은 이 몸이 얼마나 산다고/ 부질없는 일에 묻혀 어둠만 키우랴”

동산양개(807~869) 스님의 이 선게(禪偈)처럼 불교는 무소유를 설한다. 성철 스님의 무소유한 삶은 많은 불자들의 가슴을 울렸고, 법정 스님의 <무소유> 란 책은 오랜 기간 베스트셀러였다. 기독교에서도 ‘가난한 자가 천국에 간다’고 한다. 테레사 수녀의 청빈한 삶은 존경의 대상이었다. 욕망(欲望)을 버리거나 줄이라는 것은 모든 종교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자본주의화된 세상은 끊임없이 욕망을 부추긴다. 요즘 나라를 뒤흔드는 쇠고기 사태는 생명, 기본권에 대한 국민의 욕망과 한미FTA가 잘 되도록 하려는 대통령의 욕망이 부딪친 것이 본질이 아닐까. 욕망은 국가로부터 개인에 이르기까지 온갖 문제의 근원이다. 종교적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욕망의 문제는 절실하다.

욕망이라는 화두를 불교와 현대학문의 입장에서 다각도로 성찰해보는 자리가 마련된다. 밝은사람들연구소(소장 박찬욱)가 ‘욕망, 삶의 동력인가 괴로움의 뿌리인가’라는 주제로 14일 오전 10시 서울 조계사 경내 한국불교역사기념관에서 주최하는 학술연찬회다. 초기불교, 선불교, 철학, 심리학 등을 전공한 전문가들이 욕망에 대해 전개한 주제발표문은 미리 같은 제목의 단행본으로 나왔다.

불교는 욕망을 부정하는 금욕의 종교라는 것이 통념이지만 전문가들의 분석을 살펴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초기불교를 전공한 정준영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무엇을 하거나 가지고 싶어하는 마음을 뜻하는 욕망은 초기불교에서 까마(kama), 찬다(chanda), 라가(raga), 딴하(tanha) 등 다양한 말로 표현되고 있다”면서 “욕망이라는 하나의 단어로는 붓다가 제시한 가르침의 의미를 다 담기 어렵다”고 밝혔다.

까마는 인간의 감각을 기본으로 하는 욕망을, 찬다는 행위를 하기 위한 욕구를, 라가는 깨달음의 장애가 되는 삼독심(三毒心)의 하나인 탐욕을, 딴하는 윤회를 지속하게 만드는 괴로움의 원인으로서 제거되어야 할 대상을 가리킨다.

정 교수는 “까마와 라가는 괴로움의 원인이나, 찬다와 딴하는 괴로움의 원인이 될 수도 삶의 동력이 될 수도 있다”면서 “초기불교는 모든 욕망에 대해 부정하지 않으며 삶을 영위하는 생업의 전선에서, 다른 사람을 돕는 복지활동에서, 열반을 성취하기 위한 수행에서 욕망은 개발되어져야만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긍정적 의미의 욕망과 부정적 의미의 욕망을 구분하여 사용하는 것이 초기 경전의 입장이란 것이다.

한국불교의 주류인 선불교는 이보다 더 나아간다. 이덕진 창원전문대 교수는 “대승불교의 이상인 보살은 중생들의 깨달음을 돕기 위해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거나 일견 윤리적 덕목에 반하는 것으로 보이는 행위를 하기도 한다”면서 “선불교의 입장은 욕망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욕망 속에 있으면서 욕망에 물들지 않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불교에서는 물질적 충족 등의 욕망을 결코 악으로 보지 않지만 이윤의 무한추구까지 인정하는 것은 곤란하다”면서 선사들은 깨어있음을 통해 가짜욕망을 줄이고 비우며, 진짜욕망을 늘이고 채우라고 한다고 덧붙였다.

생물학에서 욕망은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바탕이다. 우희종 서울대 수의대 교수는 “인간의 욕망이 동물의 욕망보다 못한 고통의 뿌리가 되느냐 삶의 동력이 되느냐는 그 욕망이 자기중앙(中央)적이냐 자기중심(中心)적이냐에 달려 있다”면서 “주위와의 관계에서 열려 있지 못한 인간의 욕망은 고통의 원인이 된다”고 말했다.

서양철학은 욕망을 부정하는 금욕주의와 인정하는 쾌락주의의 입장이 혼재해 있는 반면, 심리학은 욕망에 대해 아주 너그럽다. 욕망은 삶의 조건으로 그 자체에는 옳고 그름이 없으며 잘 조절하면 삶의 동력이 되고 조절하지 못하고 탐닉하면 고통의 뿌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권석만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자신의 욕망을 자각하고 현실적인 상황에 맞추어 효과적으로 조절하도록 돕는 것이 심리치료의 기본이며, 내담자는 마음을 세심하게 바라보며 욕망이라는 야생마와 대화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면서 “불교는 내향적 반성을 통해 자기조절을 추구하는 종교라는 점에서 심리학과 통한다”고 말했다.

선불교의 시각처럼 깨어있지 않아 욕망에 매이면 괴로움의 뿌리가 되고 깨어 있어 욕망에 물들지 않으면 삶의 동력이 된다는 것이 이번 학술연찬회의 결론이 되지 않을까.

남경욱 기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릿?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