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수로 등단 20년을 맞은 시인 정우영(48)씨가 시평 에세이집 <이 갸륵한 시들의 속삭임> (랜덤하우스코리아 발행)을 펴냈다. ‘시평 에세이’란 이름이 낯설다. 정씨는 “평론이 지향하는 객관과 보편 대신 주관과 개성을 들이댔다는 점에서 시평보다는 시 감상에 가깝겠지만, 직관과 이성의 균형추를 세우려 애썼다는 점에선 감상이라고만 할 수도 없다”며 ‘작명’의 이유를 밝혔다. 이>
22편의 수록글 대부분은 정씨가 2004년 이래 문예지 시평란이나 서평란에 기고한 것이다. 그의 말대로 작품을 미학적으로 분석하는 데 치중하는 보통의 시평과는 관심사를 달리하는 글이다. 글감부터가 그렇다.
정씨가 고른 시는 노동 현장의 열악함과 노동자들의 애환을 그린 ‘노동시’, 끼니를 때움으로써 비로소 우리가 삶을 연명하고 있음을 새삼 일깨우는 ‘밥시’를 비롯, 인간과 사회의 낮은(혹은 근본적인) 자리에 눈을 맞춘 작품 일색이다.
정씨는 이들을 ‘갸륵한 시’라고 부른다. ‘갸륵하다’엔 ‘딱하고 가련하다’ ‘착하고 장하다’라는 이질적 뜻이 공존한다. 고도 자본주의에 젖은 2000년대 한국인 삶의 감각에 비춰볼 때 이들은 시대 분위기에 안 맞는 ‘갸륵한(딱한) 시’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정씨에겐 이들이야말로 풍요의 환상에 가려진 사회적 환부를 생생히 드러내는 ‘갸륵한(장한) 시’다.
그가 호명한 시인 중엔 복효근 표성배 최진섭 임성용 김태정 이안 우대식씨 등 조금 낯설다싶은 작가가 여럿이다. 신용목씨처럼 정씨가 관련글을 쓸 당시엔 덜 알려졌다가 지금은 문명(文名)을 얻고 있는 이도 눈에 띄는데, 다른 시인들도 이처럼 격려 받았으면 하는 것이 정씨의 바람이다. “(시인이)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힘겹게 들어 올리기 전에 문예지에서 좀 부추겨줄 수는 없었을까.”(87쪽)
문단 주변부를 살피는 정씨의 밝은 눈 덕에 독자는 오늘날 한국시단의 한 켠에서 조용히 이룩되고 있는 놀라운 성취를 목격하게 된다. 일례로 공장노동자 출신으로 작년 첫 시집 <하늘공장> 을 펴낸 임성용씨는 노동 현장의 참상을 소름 돋을 만큼 생생히 묘사하면서도, 80년대 노동시처럼 그것을 선동 구호로 박제화하지 않는다. 하늘공장>
대신 노동자들이 겪는 비인간적 상황이 그들의 내면과 생활 세계를 위기로 몰아가는 양상을 정치하게 그리면서 노동시의 새로운 거처와 미학을 제시한다.
4년 전 해남으로 귀농한 김태정 시인은 시집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2004)에서 ‘호마이카상’ ‘286컴퓨터’ ‘솜틀집’ ‘루핑지붕’ 등 낡고 잊혀진 일상적 소재로 애달프면서도 훈훈한 공감의 시를 빚어낸다. 여기에서 정씨는 “지상에 순정한 세계를 퍼뜨리는 민중 서정시의 아름다움”(218쪽)을 발견한다. 물푸레나무를>
문인수 김명인 도종환 박형준씨 등 잘 알려진 시인을 포함, 책에서 다뤄지는 시들은 서정성과 리얼리즘이란 공통 기반에 서있다. 시를 많이 접해보지 않은 독자라도 해설을 좇으며 두세 번 거듭 읽다보면 쉽게 공감과 감동을 얻을 만한 작품들이다.
이들은 “엽기와 발랄을 표면에 건 망상 문학이 지금 우리 문학의 대세를 이루고 있다”(38쪽)고 비판하는 정씨가 생각하는 ‘좋은 시’의 구체적 사례이기도 하다.
이훈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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