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의 글ㆍ이형진 그림 / 디딤돌 발행ㆍ96쪽ㆍ8,500원
초등학교 3학년생 구만이가 사는 곳은 하늘만 빼꼼이 보이는 산골마을. 어느날 마을 앞으로 고속도로가 뻥 뚫리자, 마을 사람들은 자동차 소음에 두 귀를 틀어막고 괴로워한다. 반면 구만이는 고속도로를 쌩쌩 달리는 트럭구경에 시간 가는 줄 모르는데…. 그러던 어느날 돼지를 싣고가던 트럭 한 대가 옛 서낭당 자리에서 뒤집히고, 마을사람들은 논으로 밭으로 달아나는 돼지를 잡기위해 너도나도 부지깽이를 들고 나선다. 진짜 사건은 여기서부터다.
어른들을 따라 돼지몰이에 나서 산속을 뒤지던 구만이는 우연히 자신을 괴롭히던 명식이형이 돼지 한 마리를 동네 쪽이 아닌 산속 동굴로 몰아가는 광경을 목격한 것. 삭정이를 밟아 바스락 소리가 나는 바람에 명식형의 눈에 띈 구만이는 이 사실에 대해 침묵할 것을 강요당한다.
작품의 백미는 자신이 목격한 것을 말하지 못해 불만스럽고 답답해 하는 구만이와, 돼지를 빼돌리는데 거의 성공했다가 구만이에게 발각돼 안절부절 못하는 명식 사이의 심리적 갈등이 증폭되고 해소되는 과정에 대한 묘사다.
중학교 밖에 나오지 못한 명식이가 대학을 나온 또래 상철이에게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학비 마련을 위해 돼지몰이를 했다고 구만에게 울먹이는 대목이나, 구만이가 그의 처지를 이해하고 이를 ‘묵인’하는 결말은 “자신의 물건이 아닌 물건에 손대지 말라”는 식의 설교로 끝맺는 계몽주의적인 결론보다 훨씬 매력있다.
이와함께 ‘고속도로’로 상징되는 문명과 ‘서낭당’으로 상징되는 토속적 세계와의 갈등 속에서 결국 고속도로의 건설이 발전과 진보보다는 공동체의 끈끈함을 해체시키고 탐욕을 조장한다는 비판적 메시지도 읽을 수 있다.
이왕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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