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지난 주말 한국축구는 낭보를 전해주기는커녕 졸전 끝에 국민들의 울화를 더해주었다. 지난 31일 벌어진 2010 남아공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예선 요르단과의 3차전에서 한국축구대표팀은 중반까지는 뻥뻥 뚫는 듯 보였지만 결국 뻥뻥 뚫리며 2-2 무승부에 그쳤다. 경기 내용도 문제지만 경기 직후 허정무 감독이 꺼낸 ‘이운재(수원) 사면론’은 네티즌은 물론 축구팬들을 당혹케 했다.
허 감독은 “골키퍼 이운재가 징계를 받아 출전하지 못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축구협회에 사면을 건의할 생각이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아시안컵 음주 사건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당시 주장 완장을 찼던 이운재는 주동자로 분류돼 대한축구협회로부터 1년간 대표선수 자격 상실 징계를 받았다. 사면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먼저 아무리 개최국 어드밴티지가 있었다 하더라도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뤄낸 한국축구의 성패가 선수 1명에 의해 좌지우지 될 수 있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결국 허 감독은 여론의 역풍에 부닥치자 ‘공식적으로 요청한 적이 없다’고 발을 뺐지만 작금의 상황은 여러모로 모양새가 좋지 않다. 더욱이 3차예선 상대가 요르단(FIFA랭킹 100위) 투르크메니스탄(150위) 북한(118위) 임을 감안할 때 ‘이운재 사면론’을 꺼낸 것은 참 딱하기까지 하다. 축구협회도 신중해야 한다. 한번 원칙을 깨면 나쁜 전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훌륭한 선수가 되려면 축구도 잘해야 하지만 일상 생활에서도 후배들의 귀감이 돼야 한다. 태극마크를 달고 국위선양을 위해 나선 원정에서 한밤중에 후배들을 불러내 술판을 벌인 것은 큰 잘못이다.
짚고 넘어갈 것은 허정무 감독의 발언 행간에서 현 대표팀 선수들에 대한 불신의 뉘앙스가 감지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허 감독의 다소 성급한 발언은 대표팀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연장선상에 있을 수 밖에 없다. 국가를 대표하는 축구대표팀에 포지션별 최고의 선수를 뽑고 싶은 것은 모든 감독의 바람일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최고의 선수를 뽑았고, 조련한 선수들의 플레이를 가장 먼저 책임져야 할 사람은 바로 감독이다. 감독을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비유할 때 천상의 화음을 만들어내든 아니면 불협화음을 내든 지휘자가 하기 나름이듯 대표팀의 경기력도 감독이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굳이 거스 히딩크 감독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감독은 경기력을 책임져야 하는 한편 선수들에 대한 외풍을 막아주는 바람막이 역할도 해야 한다. 히딩크 감독은 한일월드컵 전에 프랑스와 체코에 잇달아 0-5로 대패, ‘오대영 감독’이라는 비난에 직면했지만 “잘했다, 좋은 경험을 쌓았다”며 선수들을 격려하며 감싸 안았다. 결국 히딩크 감독의 격려는 선수들의 자신감으로 이어져 4강 신화의 토대가 될 수 있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어느 책의 제목처럼 선수의 능력을 120% 이끌어내는 것은 어찌 보면 질책보다 따뜻한 격려일지도 모른다.
약졸을 강병으로 만드는 것은 장수의 몫이다. 자기 품안의 선수가 성에 차지 않는다고 남의 떡을 곁눈질해선 안된다. 일류 요리사는 최고의 재료만 가지고 최고의 요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가용 할 수 있는 재료에 자신의 손맛을 더해 최고의 요리를 탄생시키는 것이다. 늦었지만 요르단, 투르크메니스탄을 상대로 ‘지옥의 원정길’에 나선 허정무 감독의 손맛을 기대해본다.
여동은 스포츠팀장 dey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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