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환 등 66명 / 화남
1987년 6월 9일 연세대 앞에서 대 정부 시위를 벌이던 이 학교 2학년생 이한열이 경찰이 발사한 최루탄을 맞고 쓰러졌다. 그는 7월 5일 결국 사망했다. 닷새 뒤 100만여명의 시민들이 서울시청 앞을 메운 가운데 열린 이한열의 장례식은, 그해 1월 서울대생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으로 촉발된 ‘6월항쟁’의 정점을 이룬다.
‘최루탄을 쏘지 마라 우리들은 일어섰다 해일이 되고 최루탄이 터졌다/ 최루탄을 쏘지 마라 우리가 개라면 개새끼의 나라가 될 것이고 우리가 바퀴벌레라면/ 바퀴벌레의 나라가 될 것이다 돌이킬 수 없나니 전진할 수 있을 뿐/ 최루탄을 쏘지 마라 우리들의 진군에 최루탄을 쏘지 마라 개새끼들아,/ 버러지들아 최루탄을 쏘지 마라 우리 치열하고, 참혹하게 아름다운 민주, 민중해방세상 기필코 이룰 것이니’
1980년대는 한국문학이 당대의 현실과 민중에 가장 밀착한 시대였다. 그때 ‘최루탄을 쏘지 마라’고 절규했던 시인 김정환은 6월항쟁 20년 후인 2007년 이한열을 추모하는 시를 발표했다.
‘너의 죽음으로 이 시대 청춘은/ 이리 밝고 맑고 명랑하다./ 앞장서 죽은 거룩함은 거룩함의/ 몸이다./ 한열아 아직/ 쉬지 못하리,/ 아직 한참을 더 가야 한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구나.’(‘거룩한, 젊은 몸’ 부분).
<유월, 그것은 우리 운명의 시작이었다> 는 6월항쟁 20돌이던 지난해 나온 기념시집이다. 시인 66명이 최루탄 냄새 자욱한 당시의 현장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증언한 시,이후 20년 세월의 소회를 담은 시를 모았다. 유월,>
그때 스스로 ‘꽃병’(화염병)이 되어 날아가고 싶었다던 그들은, 20년이 지난 지금 과연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왔다고?”라고 반문하기도 한다.
‘나는 그때 만삭이었다/ 남편이 어깨에 민들레 같은 최루탄 흉터를 만들어왔다/ 그곳에서 봄 다음의 여름 같은 아이가 나왔다/ 이름이 새벽이었다/ 그 후 해마다 아내는 넝쿨장미꽃 피는 유월에/ 새벽이를 낳을 준비를 한다’(김경미 ‘이브,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전문).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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