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출범 100일인 3일 한나라당은 우울했다. 하늘엔 먹구름이 가시고 해가 나왔지만 한나라당 당사 위에는 여전히 먹구름이 낮게 깔려 있는 듯 했다.
작년 대선 이후 쭉 여의도 당사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던 플래카드가 전날 내린 비 때문인지 더욱 후줄근했다. 플래카드에는 이렇게 써 있다.‘경제 살려 보답하겠습니다.’
작년 12월 19일, 10년 만의 정권 탈환에 열광하는 지지자들과 ‘이명박’을 상징하는 파란 목도리로 물결 쳤던 당사 앞 도로는 늘어선 경찰 버스와 군청색 군복을 입은 전투 경찰들의 차지가 돼 버렸다. 10년 만의 여당 복귀에 가슴 벅차 하던 당료들의 얼굴은 최근 들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한 사무처 직원은 “차라리 국민 지지를 받던 야당 때가 더 신났던 것 같다”고 말했다.
‘디지털 정당’을 자처하는 한나라당은 인터넷에서 찾아 볼 수 없었다. 1일 새벽 홈페이지가 해킹을 당한 뒤로 네티즌들의 공격이 이어졌고, 그래서 아예 서버를 닫아 버린 것이다.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는 안내문만 뜨는 여당 홈페이지는 여당이 처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이날 조윤선 대변인의 취임 100일 논평은 “기대와 희망이 크신 만큼 실망도 크신 국민께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로 시작했다.
청와대도 하루종일 뒤숭숭했다. 인사쇄신을 앞둔 불안감마처 겹쳐 어둡고 심란했다. 직원들은 “우리가 뭐 잘했다고 100일을 챙기겠냐”며 자조섞인 반응이었다. 한 직원은 “이제 겨우 100일이라니 앞으로 어떻게 버틸 지 막막한 심정 뿐”이라고 했다. 이날 청와대에서 유일하게 분위기를 낸 곳은 점심 특선메뉴로 갈비찜을 내놓은 구내 식당 뿐이었다.
당ㆍ정ㆍ청 수뇌부가 이날 총리 공관에 가진 고위 당정협의회도 시종 무겁고 침울했다. 모두 발언에선 “송구” “죄송” “반성”이란 단어가 이어졌다. 한승수 총리는 “정부 출범 100일을 맞아 축제가 돼야 할 오늘, 저는 매우 무거운 마음으로 이 자리에 나왔다”며 “무거운 책임감을 통감하고 국민에게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사람도 100일이 돼야 자기 면역력을 갖추고 성장하기 시작한다는 말이 있다. 그 동안 시행착오를 뼈저리게 반성한다”고 말했다.
환호가 떠난 자리를 자조가 차지한 채, 자축대신 자책만 오간 우울한 100일이었다. 그럼 돌을 맞이하는 내년에는 웃을 수 있을까. 전망이 엇갈린다. 한 당직자는 “매를 일찍 맞았다. 약이 될 것이다”고 했다. 하지만 다른 당직자는“자칫하면 이전 정부처럼 국민들이 일단 손사래부터 치고 보는 메신저 거부 현상이 이번 정부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동훈 기자 dhlee@hk.co.kr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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