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재협상 대신 들고 나온 카드는 수출자율규제(VER: Voluntary Export Restraint) 또는 자율규제협정(VRA: Voluntary Restraint Agreements)이다.
미국 내 수출업자들의 자율 결의 형식을 통해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를 한국에 수출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 거리의 촛불을 잠재울 수 있는 최선의 해법이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수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수입위생조건에 반영하는 재협상임을 정부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외교적 마찰이다. 결국, 기존 협상 내용(수입위생조건)은 그대로 인정하되, 이와는 별개로 자율규제 형식으로 우리 국민들의 성난 민심 달래기에 나선 것이다.
통상 환경이 많이 바뀌었지만, 과거 전례는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81년 미국과 일본 간의 자동차 수출자율규제 협정이다. 일본 자동차의 대미 수출이 급증하면서 미국 자동차업계가 곤경에 처하자 미국은 일본에 대해 자동차 수출물량을 일정대수로 제한하는 수출쿼터를 요구했고, 일본측은 이를 자발적으로 수용했다.
미국은 또 자국의 철강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1980년대에 우리나라 등 주요국과 철강 자율규제협정을 체결하고 사실상 수입물량을 제한했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수출자율규제에는 시한이 정해져 있다. 타이슨푸드 등 미국 5개 주요 육가공업체들이 3일 공동성명을 내고 한국에 수출하는 쇠고기 박스에 임시로 120일간 30개월 이상 쇠고기 여부를 표시하는 특별 라벨을 부착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이런 연장선상에 있다.
미국측이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출을 6개월, 또는 1년 한시적으로 금지하겠다고 약속했을 때 국민 정서가 수용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구속력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미국 수출업체들이 자율적으로 월령 표시를 하고 수출을 제한한다지만, 수입위생조건에 배치되는 내용을 얼마나 제대로 준수할지 미지수다. 미국 정부가 업체들을 강제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자칫 제3국과의 통상 마찰의 빌미가 될 수 있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대 교수는 “미국 정부가 업계에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출 금지를 강제하는 경우, 현행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는 제3국이 최혜국대우와 관련해 제소를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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