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의회 의원으로 활동하기 위해 캘리포니아에서 워싱턴으로 이사한 처음 일주일은 등원 준비에 정신이 없었다. 눈도 비도 안 내리고, 겨울도 없고, 항상 더운 날씨의 사막인 캘리포니아의 드넓은 신도시에서만 거의 30년을 산 내게 워싱턴은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했다. 겨울철 눈보라와 좁고 꼬불꼬불한 길, 복잡한 교통, 여기저기 널린 동상들, 그리고 유명한 역사적 건물들이 가득한 워싱턴의 새로운 환경에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걱정도 없지 않았다.
캘리포니아의 작은 도시 다이아몬드에서 온 촌놈에게 워싱턴은 일방통행과 동상이 우뚝 선 로터리가 어찌나 많은지 매일 방향감각을 잃고 헤맸다. 워싱턴은 남캘리포니아와는 달리 도로가 바둑판 같지 않다. 수도를 중심으로 둥글게 원형으로 된 고속도로를 벨트웨이(Beltway) 라고 부르는데 잘못하면 하루종일 빙빙 돌 수도 있다. 그래서 워싱턴에 살면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바깥사정을 모르는 사람을 일컬어 인사이드 벨트웨이(Inside Beltway) 사람이라고 부른다. 워싱턴에 오니 정말 미국에 온 것 같고, 너무도 아름답고 웅장한 역사적 건물들이 포토맥 강을 끼고 있어 볼 만했다.
아파트를 구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지만 다행히도 워싱턴 시내에서 포토맥 강 건너에 위치한 크리스털 시티란 곳의 고층 아파트를 구했다. 6개 고층건물이 지하로 서로 연결돼 있고, 또 지하철과도 연계돼 있어 비교적 편했다. 아파트 월세 등 모든 비용은 의원 개인이 부담한다. 봉급 외에는 단 한 푼도 정부의 지원이 없다. 그래서 부자는 비싼 아파트, 가난한 의원은 아예 의원사무실에서 먹고 자며 목욕은 구내 사우나에서 하고, 어떤 의원은 개인 집 지하실에 방을 구하기도 한다. 웬만한 거리는 기차로 통근하고, 가까운 거리는 지하철을 이용한다.
고급 승용차에 운전기사까지 둔 한국의 국회의원들의 모습은 미 의회 의원 과반수가 지하철을 타고 등원하든가 중고차를 사서 몰고 다니는 것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나와 친한 샌디에이고 출신 의원은 아예 포토맥 강에 묶어놓은 배로 된 집(House Boat)에 둥둥 떠서 산다.
국회에서는 초선 의원들끼리 제비를 뽑아서 경치가 좋은 방을 차지한다. 의사당 안에는 의원 전용식당이 있지만 비좁고 음식 선택이 제한돼 있어, 대개 구내 부페에서 관광객이나 직원들과 섞여 줄을 서서 같이 먹는다. 의사당 안은 한국 같이 각 의원마다 책상이 있고 명패가 있는 게 아니다. 지정석이 없어서 아무데나 빈 자리에 가서 앉는다. 의사당에 들어가면 뒤에서 의장석을 바라볼 때 가운데 복도를 중심으로 오른쪽은 공화당 의원, 왼쪽은 민주당 의원들이 앉는다. 나는 처음에 이를 모르고 민주당 쪽에 앉았더니 민주당 출신 의원들이 어디에서 온 촌놈 초선 의원인가 나를 이상하게 보고, 공화당 쪽에선 몇몇 의원들이 달려와 앞으로는 오른쪽에 앉으라, 왼쪽은 좌파 의원들이 앉는 데라고 알려줬다. 의사당 안에서는 상대 당 의원들을 향해 ‘Gentleman from other Side of Aisle’이라고 부른다.
의사당 뒤쪽에는 의원 휴게실이 공화당은 오른쪽, 민주당은 왼쪽에 각각 따로 있다. 그 안에서는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고, 낮잠을 잘 소파도 몇 개 있고, 20개 남짓 의자가 줄지어 있다. 모여 앉으면 주로 ‘Y담’ 아니면 지역구에서 있었던 우스운 일들이 화제다. 각 사무실마다 텔레비전이 서너 개 있어서, 회의장 내 상황이 실시간으로 방송되기 때문에 투표할 때 외에는 회의장에 가지 않고 사무실 안에서 텔레비전을 본다. 발언할 때는 물론 의사당으로 간다. 그래서 관광객들은 왜 텅 빈 의사당에서 혼자 연설을 하느냐는 질문을 한다. 하지만 의사당 내 어디를 가든 폐쇄회로 텔레비전이 있어서 의사당 안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 수 있으니 빈 의사당에 쭈그리고 앉아서 연설을 듣는 의원이 오히려 이상해 보인다.
의원들은 네모난 전화 같은 걸 차고 다니면서 투표 15분 전에 벨이 울리면 부지런히 의사당에 가 자신의 ID카드를 투표구에 넣어 찬성, 반대, 기권 중 하나를 누르고, 이것이 곧장 의사당 높은 벽에 장치돼 있는 출석판에 기재된다. 또 공화당 의원이 연설을 할 때는 당번 민주당 의원이 맨 앞에 앉아 연설 중 민주당의 특정 의원을 공격한다거나 의원답지 않은 점잖지 못한 용어를 사용한다거나 할 때 즉시 발언을 중지시키고 사과와 의사록 삭제를 요구한다. 이럴 때 이를 판정해주는 ‘Parliamentarian’이 있다. 이는 의원이 아니고 국회법을 잘 아는 전문가다. 만일 끝내 말을 안 듣고 언성을 높일 때는 경비원이 끌고 나가게 돼 있고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3개월 간 의사당에서 발언을 못하는 식의 징계처분을 내린다. 만일 이런 사실이 지역에 알려지면 재선에 큰 걸림돌이 된다. 한국 같이 단상을 점령한다거나 소리소리 지르고 의자를 집어 던지는 등의 일은 미 의회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신성한 의사당 안에서의 이런 행동은 폭력으로 간주돼 십중팔구 윤리위원회에 회부돼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 나머지 국회 개회 기간 동안 의사당 내 출입을 거부당하던가 심하면 의원직을 박탈당하는 경우도 생긴다. 미국은 여러 인종이 섞여 살면서 문화, 종교, 언어, 풍습 뿐 아니라 각자 생김새와 피부색깔 마저 다른 복잡 다양한 사회여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오랫동안 다지고 또 다져온 제도를 엄중히 지켜왔다. 악법도 법이라는 철칙 아래 법을 어기면 조금도 인정사정이 없는 무서운 나라다. 그래서 질서가 정연하고 비리가 비교적 적은가 보다.
놀라운 일은 이 ‘잡동사니’ 미국 이민자들의 미국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무척 높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단일민족, 따지고 보면 모두가 다 같은 한 민족, 한 핏줄 아닌가. 그래서 우선 인정이 앞서고, 선배와 후배, 같은 고향과 같은 성, 본 등 다양한 인맥이 얽힌 인정이 많은 사회다. 이젠 한국도 세계화 시대에 들어서면서 제도를 확립하고 또한 이를 엄격히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인정사정 없는 메마른 사회가 되라는 것은 아니다. 나는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바로 그 따뜻한 인정, 웬만한 것은 봐주는 우리의 전통문화가 너무나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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