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기 이틀 전(2월23일) ‘배제의 정치는 실패한다’는 칼럼(메아리)을 쓴 바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미국을, 기업을, 부자를, 호남을 차례로 멀리하는 배제의 정치를 하다가 결국 스스로 고립돼 실패하게 됐음을 지적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공무원을 적대시하고 민노총과 대화조차 하지 않는 점이 불길하다고 우려한 바 있다.
그 칼럼의 마지막 대목은 이랬다. “배제의 정치가 누적되면 대통령과 국민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게 된다. 때론 소명의식을 갖고 정면돌파를 해야 할 때도 있지만 지나친 자기확신이 이끄는 배제의 정치가 범람한다면 5년 후 삽화는 다시 우울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그 우려했던 상황은 5년 후가 아니라 취임 100일만에 왔다. 이제 다시 배제의 정치를 논하는 것은 부질없다. 사상 최대 표차의 대선승리가 오만과 배제의 정치를 불러 오늘 이 참담한 현실을 맞이하게 됐다는 사실은 이 나라 백성이면 누구나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어떤 정치를 해야 하는가. 소통의 정치, 화합의 정치, 탕평의 정치를 하라는 목소리가 높다. 맞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교과서적이어서 현실정치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참 막연하다. 그래서 ‘역(逆)발상의 정치’를 제시하고 싶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는 깜짝 쇼를 하라는 말이 아니다. 흔히 빠지기 쉬운 지연과 학연, 인연을 과감히 멀리해 측근정치, 코드인사에 매몰되지 말라는 것이다. 마침 이 대통령이 인적 쇄신을 놓고 고민 중이라고 하니 이 기회에 역발상의 인사를 했으면 한다.
한 예를 들어보자. 국민의 정부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은 예상을 깨고 초대 비서실장에 구여권 인사인 김중권 씨를 임명했다. 김 씨가 비서실장으로 있는 동안 가신들의 대통령 면담 신청은 번번히 차단됐고 인사 민원, 쪽지 첩보 역시 비서실장실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그도 2년 조금 못돼서 동교동의 집요한 공략에 물러나야 했다. 이후 동교동계가 전진 배치돼 ‘형님 동생’의 유기적인 당청관계가 구축됐으나 그 밀접함이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가 곪아터질 때까지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지금도 그런 경향이 농후하다. “정무직 인사는 청와대 왕비서관이 좌지우지하고 그 뒤에는 대통령의 형이 있다”는 얘기가 시중에 파다하다. 사실보다 훨씬 과장된 측면이 있겠지만, 인사수석이 없어지면서 시스템에 의한 인선과 철저한 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인사파동이 빚어졌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다.
이번에도 내 사람을 먼저 찾고 그 다음에 배치할 자리를 생각하는 적재적소(適材適所)로는 안 된다. 자리의 성격을 정확히 보고 가장 적합한 인물을 기용하는 역발상의 적소적재(適所適材) 인사가 돼야 한다.
정무직만 그런 게 아니다. 어느 정권에서나 청와대로 차출되는 공무원은 각 부처에서 선두를 달리는 에이스들이었다. 지난 정부에서도 그랬다. 그러나 지금 노 전 대통령의 청와대에서 근무한 경력은 천형(天刑)이 되고 있다. 공무원교육원으로 내쳐진 공직자 중에는 유능한 사람이 적지 않다. 너무도 구태스럽고 비체계적인 인사가 횡행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굳이 사족을 달자면 역발상은 인사에서만 필요한 게 아니다. 대북정책이나 경제정책도 그렇다.
이영성 부국장 겸 정치부장 leeys@hk.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인터넷한국일보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