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초대 경제팀장인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환란(換亂)의 멍에를 지고 10년간 야인 생활을 보냈다. 그가 야인 시절 고독과 절망감에 휩싸일 때마다 들른 곳이 있다. 조선시대 추사 김정희가 8년 간 귀양살았던 제주 모슬포와 당쟁으로 18년 간 유배생활했던 다산 정약용이 말년을 보낸 남양주의 팔당호 주변이었다.
그는 차가운 바다바람이 을씨년스럽게 불어오는 모슬포와 강바람이 소슬하게 불어 닥치는 팔당호를 찾으면서 매화가 되고자 했다. 엄동설한(嚴冬雪寒)을 이겨내고, 추위가 가시기도 전에 가장 먼저 피는 꽃이 되고자 한 것. 조선시대 부자가 함께 귀양갔던 가문의 두 할아버지의 고난도 머리 속에 스쳤다고 한다. 환란의 멍에는 그에겐 기나긴 터널이자, 어둠이었다.
도마에 오른 경제팀장 리더십
강 장관은 마침내 추위와 절망을 이겨내고 새 정부 1기 경제팀 수장이 됐다. 화려한 컴백은 야인시절의 서러움을 날려 버렸다. 그는 경제대통령을 자임한 이명박 대통령을 받들어 경제 살리기에 올인했다.
하지만 그는 다시금 엄동설한을 이겨내야 할 정도로 시련을 겪고 있다. 이명박 정부 100일 성적이 낙제점이지만, 경제 성적표도 기대 이하이기 때문이다. 새 정부는 규제완화, 감세 등 경제활력 조치를 내놓았지만, 성장, 물가, 경상수지에 빨간 불이 켜지면서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다. 고유가, 고물가로 서민들이 못 살겠다고 아우성치고 있다. 경제회복을 기대했던 민심은 실망과 분노로 바뀌고 있다.
자연스레 강 장관의 리더십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경제수장에 걸맞은 권위가 없고, 부처 간 조정능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봇물 터지고 있다. 금리 인하, 환율정책, 추경예산 편성, 메가뱅크 등 경제정책을 둘러싸고 당정 간, 부처 간 마찰이 불거졌던 것이 이를 반증한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로 정권의 안위마저 걱정되는 상황에서 경제팀장의 역할은 초라하기만 하다. 경질 대상 상위 순번에 오르는 불명예마저 당하고 있다.
‘얼리 버드(early bird)’인 이 대통령을 좇아 아침 7시부터 밤 늦게까지 일해온 강 장관으로선 실망스런 결과일 것이다. 그의 리더십이 비판 받는 것은 경제 상황에 적합하지 않은 재정과 환율정책을 둘러싼 부처 간 마찰로 신뢰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경제팀은 팀 웍이 중요하다. 하지만 ‘강고집’으로 불리는 외골수적 성격은 주요 경제현안마다 독선으로 흘러 타 부처와 마찰을 빚고 있다.
그는 환란 직전 한국은행의 독립 문제로 한은맨들과 카인의 후예처럼 떼와 오기로 맞서 이전투구를 벌였다고 회고했다. 그가 노골적인 금리 인하 요구 발언을 하는 것도 물가 안정을 중시하는 한은 입장을 배려하지 않은 것으로, 여전히 카인의 후예답다.
인사에 관계없이 달라지기를
모든 정사를 친히 살피는 만기친람(萬機親覽) 형의 이 대통령 통치스타일도 강 장관의 운신 폭을 더욱 좁게 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경제운용 시스템을 부처별 자율운용보다는 청와대 직할체제로 바꾼 데다, 청와대 내 경제수석과 국정기획수석,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도 경쟁 체제로 만들어 정보 공유가 제대로 안 돼 혼선을 빚는 사례가 많다.
이러니 경제팀장의 리더십에 한계가 있고, 영(令)도 안 서는 것이다. 그룹 회장 격인 이 대통령이 계열사 부회장과 사장들인 경제팀장과 각부 장관들에게 자율권을 주지 않고, 수명(受命)과 복종이 몸에 밴 전무 상무 대하듯 하는 시스템이다.
그의 공직생활 30년은 끝없는 도전과 응전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도전이 없으면 스스로 도전할 정도로 소신파였다. 이번 인사 쇄신에서 살아 남는다면 경제팀장의 리더십에 대해 다시 한번 가다듬기 바란다. 그에게 따라붙는 고집, 마찰, 유아독존 등 달갑지 않은 말 대신 경청, 설득, 화합, 조율의 이미지가 연상되도록 환골탈태해야 한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허리를 조금 굽히면 편안하게 서 있을 수 있다(leaning against wind)는 미국 통화당국의 지혜를 본받았으면 한다. 바람에 맞서 뻣뻣하게 서 있으면 넘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이의춘 논설위원 e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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