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삶과 문화] 파우스트 박사의 비원(悲願)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삶과 문화] 파우스트 박사의 비원(悲願)

입력
2008.06.04 00:21
0 0

저는 자주 괴테의 <파우스트(faust)> 주인공처럼 영혼이라도 팔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젊음을 되찾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지난 10년 동안 구축해온 한국디지털종합도서관(www.kdlib.com)을 제 손으로 완성하고 싶어서입니다.

전자도서관이라면 수두룩한데 좀 과장된 게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제가 구축하려는 도서관은 여타 도서관과 달리 이 땅의 모든 필자가 원고를 완성하는 대로 입력하고, 검색창을 두드리면 국어사전 수준의 설명 밑에 각 학파의 관점과, 저작권자가 유료로 올린 서적과 논문은 유료로, 무료로 올린 것은 무료로 본문까지 읽을 수 있는 도서관입니다.

제가 이런 도서관을 꿈꾸기 시작한 것은 우리 학과 학생들이 논문을 쓰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 일주일 이상 묵으면서 이 도서관 저 도서관을 헤매고, 주변 문인들 가운데 문단에 안면이 없으면 좋은 작품을 쓰고 썩힌다는 걸 안 뒤부터입니다.

그래서 관련기관에 앉은자리에서 골라 읽고 발표하는 세상을 만들 수는 없느냐고 물어봤지요. 대답은 부정적이었습니다. 정부가 구축해서 무료로 공개하면 저작권 침해로 이어지고, 유료로 공개하면 전매사업(專賣事業)이 된다더군요. 그리고 기업은 투자에 비해 실익이 없어 외면한다는 겁니다.

지금은 많이 사정이 좋아지지 않았느냐구요? 마찬가지입니다. 정부가 모든 저작물을 입력하고도 본문을 공개하지 못하는 것은 저자로부터 전송권(電送權)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일부 업체가 본문을 공개하는 것들은 출판사나 학회로부터 자료를 넘겨 받은 불법물입니다. 제 논문 몇 편이 이렇게 공개되고, 열람료를 배당하지 않는데도 침묵하는 것은 불법이라도 도움이 되리라는 판단 때문입니다.

이런 사정을 안 저는 필자 중 누군가 나서야 하고, 그걸 먼저 생각한 사람이 나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시작하면 다른 사람들도 따라오리라는 생각에 1999년 한국문학도서관(KLL)이라는 전자도서관을 구축하기 시작했습니다.

엄청난 시련을 겪었지요. 교수 봉급 이외 다른 수입이 없는 사람이 십년 동안 매월 수천만 원씩 바치고, 강제로 가족들에게 끌려 독일로 나가고, 국제 전화로 사무실을 지휘하다가 아내와 싸우기도 하고, 믿을 만한 사람으로부터 거절 당할 때는 파우스트 박사처럼 ‘헛되이 살았다’며 밤을 하얗게 지새우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1만여 명의 문인과 연구자들이 향후에 쓸 저작물까지 포괄적으로 위탁 받은 국내 최대의 문학 도서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부터는 16개 전문 도서관으로 이뤄진 종합도서관으로 확장하고, 모든 필자가 직접 본문을 검색하고, 부분을 떼어 편저(編著)하며, 메모하며 읽은 파일로 노트로 만드는 전자책 프로그램과, 전 국민에게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무상(無償)으로 공개하려고 합니다.

그만하면 성공했는데 무슨 비원이 남아서 계속 영혼을 팔려고 하느냐고요? 아닙니다. 시스템이나 프로그램도 중요하지만, 10만 명의 필자와 1만 2,000 개의 도서관과 모든 학회와 출판사가 동참해야 한다는 또 다른 과제가 남아 있어서 계속 팔려고 합니다.

아아…, 그런 세상이 된다면, 저를 믿어준 분들을 실망시키지 않고 남은 정년까지 시도 쓰고, 논문도 정리할 수 있으니 열 번이라도 팔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 마누라도 마르가레테처럼 젊고 예뻐질 테니까요.

尹石山 시인ㆍ제주대 교수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