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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주말人] <5> 이수백 열린치과의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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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주말人] <5> 이수백 열린치과의사회장

입력
2008.06.03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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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선생님 기다리느라 목 빠지는 줄 알았습네다", "일주일동안 거저 이빨이레 구멍이 나서리, 밥을 못 먹었습네다."

5월 넷째주 일요일이던 25일 오전 9시께 경기 안성시 하나원. 중국과 동남아 등지를 통해 입국한 탈북자들이 교육을 받는 이곳에 갑자기 웅성거림이 들렸고, 이내 활기가 느껴졌다. 탈북자 40여명이 전형적인 북한 말투로 누군가를 반겼다.

열린치과의사회 이수백(59ㆍ이수백치과 원장) 회장과 동료 의사들이 들어선 것이다. 탈북자들은 마치 '구세주'를 만난 표정들이었다. 열린치과의사회는 이 회장 등 치과의사 50여명이 1999년 만든 봉사단체다.

이 회장의 일요일 아침은 언제나 바쁘다. 날씨와 계절을 가리지 않고 매주 일요일 오전 7시면 어김없이 서울 서초구 방배동 집을 출발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열린치과의사회 동료들과 만나 해장국을 먹는다.

이날도 서둘러 식사를 마친 이 회장 일행은 다시 남쪽으로 차를 몰아 하나원을 찾았다. 이 회장은 "생사를 건 탈북과정 때문인지 하나원 식구 대부분의 치아는 뒷면이 까맣게 변해 있다"며 "일요일마다 하나원을 찾는 것도 치아를 회복 시키려는 의미도 있지만 마음의 안정을 바라는 측면도 크다"고 말했다.

탈북자 무료진료는 2003년부터 시작됐다. '치아 건강이 위험한 수준'이라는 소식을 들은 열린치과의사회가 별도의 팀을 꾸렸다. 지금까지 열린치과의사회가 진료한 탈북자는 하나원 전체 입소자 1만1,515명의 96%인 1만1,116명에 달한다.

이날 이 회장 일행의 손길이 거쳐간뒤 탈북자들은 한결 가볍게 식사를 하는 모습이었다. 올해 초 입소한 홍영숙(36ㆍ여ㆍ가명)씨는 "어금니가 없어 밥을 넘기다시피 했는데, 치료를 잘 해주셔서 이제 맛있게 씹어 먹는다"고 활짝 웃었다. 정영희(36ㆍ여ㆍ가명)씨도 "빠진 윗니에 가짜 이를 넣었는데 아주 감쪽같다"며 거울에 비친 자신의 치아를 신기한 듯 살펴 봤다.

하나원 관계자는 "1999년 개원하고 많은 분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지만, 이 회장 일행처럼 열성적이고 꾸준한 사람들은 드물다"며 "탈북자들의 생활까지 꼼꼼하게 챙겨줘 입소자들은 일요일을 손꼽아 기다린다"고 말했다.

열린치과의사회의 의술 활동은 하나원에 그치지 않는다. 서울 종로구 노인복지센터와 가리봉 중국동포의 집 등도 틈만 나면 찾아 치과에 갈 여유가 없는 노인과 노동자들을 돌본다.

이 회장의 무료진료 경력은 72년 서울대 치대 재학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 소재 의대, 치대, 약대생 모임인 '송정 의료봉사회'에 가입해 농촌과 도시 빈민층들의 건강 챙기기에 뛰어들었다. 그는 "당시에는 봉사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면서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하고 싶은 일을 했던 것 뿐"이라고 겸손해했다.

봉사에 대한 단상을 묻자 그는 뜻밖에 품 속의 작은 수첩에서 조그만 신문 스크랩을 꺼내 보여줬다. 스크랩은 '착한 일을 하거나 그런 생각만 해도 그 사람 몸에는 놀라운 면역 체계가 형성된다'는 '테레사 수녀 효과'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 회장은 "주말을 하나원에 반납하고도 즐거울 수 있는 것은 봉사의 부메랑 효과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이 주말마다 환자들을 찾아 다니는 동안 1남2녀, 세 자녀는 어느 새 성인이 됐다. 특히 단국대 치대 인턴인 둘째 승훈(28)씨는 "아버지처럼 봉사의 삶을 살겠다"고 선언한 듬직한 아들이다. 대학시절 봉사활동을 통해 만난 약대 출신 아내(56)도 든든한 후원자다.

이 회장은 요즘 한가지 고민에 빠져 있다. 열린치과의사회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을, 더 야무지게 돌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그는 "사랑과 기쁨이 함께 하는 봉사가 될 수 있도록, 열린치과의사회가 추가로 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의사로서 봉사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었다"며 "젊은 후배들에게 고귀한 봉사의 기회를 좀 더 제공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게 선배의 도리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직접 의료봉사를 하지 못할 정도의 나이가 되더라도 매주 후배들의 봉사 현장을 둘러보는 시아버지 역할은 계속하고 싶다"며 따뜻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강지원 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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