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를 적대시한 게 위기를 키웠다."
취임 초부터 들이닥친 이명박 정부의 위기와 관련, 여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30일 "지금 광화문과 과천의 분위기가 엉망이다. 이런 식이니 난국이 제대로 수습될 리 없다"며 "공무원에 대한 접근법이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난국 수습에 앞장서야 할 공무원부터 마음이 떠나 있다는 얘기다.
왜 그럴까. 10년간 과거 정권의 정책과 코드를 맞춰온 공무원들로서는 새 정부의 정책 방향이 낯설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마음 급한 새 정부는 공무원들을 다그치기만 했다.
새벽출근을 종용하고, 머슴론을 설파하고, 철밥통을 꾸짖었다. 특히 기업인으로서 27년간 공무원의 탁상행정, 규제와 씨름해온 이명박 대통령은 공무원을 향해 말의 회초리를 들었다.
광화문 종합청사의 한 공무원은 "공직자는 자존심을 먹고 살아가는 집단인데 새 정부 들어 자존심 상하는 일들이 너무 많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새 정부 들어 부처 개편으로 조직을 들쑤시고 인력감축, 주말 근무 등으로 난리법석을 떨어대니 공무원들이 자긍심을 갖고 일할 수 있겠느냐며 자조하는 분위기가 많다"고 전했다.
대통령이 관료사회를 개혁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하면서 공직사회에는 차곡차곡 불만이 쌓여온 것이다. 경제부처의 한 간부는 "한미 쇠고기 수입협상 내용이 속속 야당 의원들에 전해지는 것도 따지고 보면 공무원을 반개혁세력으로 규정한 데 대한 반발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장관들의 부처 장악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장관이 약하니 청와대가 더 개입하게 되고, 그럴수록 일이 더 꼬이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공무원으로 변신한 한나라당 출신의 한 인사는 "청와대가 부처를 조정하려면 할수록 조정이 더 안 된다"며 "최근의 난맥상은 청와대와 부처간 불협화음에서 기인한 측면이 많다"고 말했다.
해결책은 없는가. 여권에선 공무원을 더 이상 개혁 대상이 아니라 동참하는 주체로 바꿔내는 분위기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은 "관료 사회는 다그친다고 되지 않는다"며"국정 철학을 놓고 청와대와 관료사회간 소통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동훈 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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