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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지식인의 오만과 편견

입력
2008.06.03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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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일 지음/기파랑 발행ㆍ384쪽ㆍ1만7,000원

1970~80년대 유럽의 외교관들이 한국에 관한 정보를 얻는 중요한 수단은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을 연재했던 일본의 시사잡지 ‘세카이(世界)’였다. 한국의 진보진영은 지금도 ‘세카이’를 남한의 억압적 현실을 세계로 전달한 진보매체로 높이 평가하고 있지만, 지은이는 이 같은 일방적 평가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1946년 1월 창간호부터 89년 12월호까지 이 잡지에 실린 한국관련 좌담, 논문, 칼럼을 분석해 ‘세카이’로 대변되는 일본 진보적 지식인의 한국관을 해부한다. 전쟁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고 재일동포 문제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등 일본내 보수우익과는 차별화된 성찰을 보여주었지만, 저자가 보기에 세카이 지식인들의 문제는 남한과 북한을 평가하는 이중적인 잣대다. 50년대 이래 이들에게 북한은 정의롭고 활력이 넘쳐 흐르고 통일지향적인 ‘지상의 낙원’ 이었다.

이 잡지는 서방언론과 접촉하지 않았던 김일성과의 인터뷰를 10차례나 게재하며 주체사상과 확인되지 않은 북한의 발전상을 충실히 보도했다. 남한에 대한 잣대는 정반대였다. 이승만을 전쟁광과 북진광으로 몰아붙였고, 박정희와 이후 군사정권이 이끌어간 한국을 거대한 정치감옥이자 병영국가로 묘사했다. 북한의 천리마운동은 소극주의를 배제하고 생산을 증가시키기 위한 운동이라고 높이 평가하지만, 새마을운동은 박정희체제를 연장하기 위한 대중동원의 수단이라고 깎아내렸다.

이들은 왜 객관적인 사실 앞에서도 진실을 외면했을까? 저자는 그것을 “선진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몸으로는 자유와 풍요를 향유하면서 관념적으로만 사회주의 체제를 동경하는 일본 좌파지식인들의 자기기만의 모순”때문 이라고 진단한다. 이들은 일본내에서 사회주의국가를 건설하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이 불가능하자 자신의 이상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투영하려했다는 것이다.

90년대 이후에는 이 잡지도 맹목적인 반한친북 자세를 철회했지만, 지금도 북한의 핵무장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북한정권의 세습체제에 대해 침묵하는 등 평화, 화해, 인권, 자유, 민주 등 과거 남한정권을 비판하는 잣대로 북한을 평가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한다. 그는 묻는다. 과거를 직시하지 못하는 이런 태도가 과연 한일양국에 이해에 기반한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가져다줄 것인가. 그의 시각에 동의하건 아니건 저자의 물음은 일본의 진보지식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에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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