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쇠고기 수입개방에 대한 한미 간의 합의에 대해 재협상을 요구하는 여론이 많지만 재협상은 현실적으로 국가 위신에 미칠 악영향 등 엄청난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다. 가장 바람직한 방향은 재협상을 요구할 만한 여건이 마련되는 것이다. 현재 국제수역사무국(OIE)가 정한 과학적 기준을 넘어서는 새로운 발견이나 미국이 광우병 위험통제가능 국가지위에서 강등되는 등의 중대한 사정변경이나 일본ㆍ대만 등 미국이 쇠고기 수입협상을 벌이는 국가와의 합의내용이 우리 측과 큰 차이를 보일 때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당장 생기기 어려운 사정 변경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당장 미측에 재협상을 요구할 명분은 사실상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과 반대일 수밖에 없다. 과학적 근거를 내세우는 미측이 이를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국제적 신뢰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으며, 다양한 한미 현안 협상에도 악영향을 미칠 소지가 적지 않다. ‘한국을 어떻게 믿고 협상을 할 수 있느냐’는 미측의 분위기가 팽배할 수밖에 없고, 이는 우리의 협상 자세에 대한 국제사회의 불신으로 번질 우려도 없지 않다. 나아가 합의 파기에 대한 원인제공으로 우리의 제2위 교역국인 미측의 무역보복을 피할 수 없다. 우리 정부가 아무리 정권을 흔드는 국내 반발이 있더라도 나라 경제가 흔들릴만한 무역보복 위험까지 감수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물론 한미 간에 재협상이 이루어진 사례도 있다. 1989년의 외국산 담배수입합의가 불평등하다는 국회와 국민 반발에 따라 6년 만인 94년 한미 간 개정협상이 개시됐고 96년에야 재개정이 이루어졌다. 그만큼 재협상을 하는 데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적어도 신뢰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재협상의 요건은 결국 동맹 관계를 고려한 미측의 이해 하에 재협상 내지 추가협상을 벌이는 길이다. 이 경우 우리 측이 이른바 광우병 위험이 있는 부위의 수입을 막을 시간을 벌 수는 있지만 미측을 설득,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만한 양보를 얻어낼 지는 미지수다. 미측이 과학적 근거보다는 한미 관계를 고려한 정치적 필요를 얼마나 더 느끼느냐가 관건이다.
정진황 기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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