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0일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은 실천력 없는 이상주의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유연한 상호주의, 실용주의를 표방했지만 말 뿐이었다. 남북관계, 미국 중국 일본과의 4강외교에서 지렛대 없이 말만 앞세우다 결국 상대에게 무시당하거나 뒤통수를 맞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이명박 정부 외교안보정책의 요체는 ‘노무현 정부와 반대로만 하면 된다’는 ABR(Anything But Roh)이었다. 지난 10년의 햇볕정책을 포기하는 대신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대북 지원을 통해 10년 내 북한주민의 생활을 3,000달러 수준으로 올려놓겠다는 ‘비핵ㆍ개방ㆍ3,000’을 내놓았다.
2월 취임식, 3월 통일부 업무보고 이후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는 이 대통령의 공약을 그대로 따랐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경제협력도, 식량지원도 없다”는 식이었다. 이 와중에 이 대통령은 현실성 없는 서울-평양 상주연락사무소 개설을 제안했다가(4월17일) 북으로부터 거부당했다.
북한은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정부가 3월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북한 인권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것도 한 몫 했다. 그들은 이 대통령에게 ‘역도, 파쇼정권’(4월1일 노동신문) 등의 격한 비난을 퍼부었다. 남북 당국 간 대화를 단절시켰고 개성공단 내 통일부 직원도 철수시켰다.
문제는 ‘비핵ㆍ개방ㆍ3,000’이 선의에서 비롯된 구호였지만 실천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 북한이 핵을 폐기할 경우 지원한다는 얘기지만 어떻게 핵을 폐기시킬 것인가에 대해서는 ‘한미 공조’ 외에는 답이 없었다. 결국 미국이 직접 북한과 핵 협상에 나서면서 ‘통미봉남’ 흐름만 농후해졌다. 미국이 북한에 식량 50만톤 지원을 약속하는 순간 강경 일변도로 나가던 정부는 대북 식량지원 원칙을 놓고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었다.
4강외교도 흔들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대통령은 4, 5월 미국 일본 중국을 차례로 찾아 양국 간의 동맹외교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방문 직후 터진 미국산 쇠고기, 일본의 독도 교과서 표기, 중국의 외교결례 논란 등으로 빛이 바랬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을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대북정책이 실용정신에 맞는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며 “지금처럼 국내외 상황이 어려울 때 모든 국민의 지지를 받으며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는 것도 남북관계인 만큼 정부의 전향적 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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