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가 29일 프랑스 파리에 도착, 이틀간의 방문 일정을 시작했다. 이 달 초 총리에 취임한 후 사실상의 첫 해외 나들이 길에서 그는 성대한 환영을 받았다. 지난주 독립국가연합(CIS) 총리 회담 참석차 벨로루시를 방문했지만 벨로루시는 옛소련 영토여서 이번 프랑스 방문이 첫 해외 방문인 셈이다. 영국 일간 더 타임스는 30일 "프랑스가 자국을 방문 중인 푸틴 총리에게 대통령 수준의 환영을 해 주었다"고 보도했다.
푸틴 총리의 프랑스 행은 1주일 전 사실상의 첫 해외방문국으로 중국을 택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행보와 비교되면서 누가 러시아의 실질적인 최고지도자인지에 대한 논란을 키우고 있다.
푸틴 총리의 위상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푸틴 총리는 29일 프랑수아 피용 프랑스 총리와 회담을 가진 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주최하는 엘리제궁 저녁 만찬에 참석했다. 대통령이 자신보다 격이 한 단계 낮은 총리를 대통령궁에 초청, 만찬을 연 것은 외교 관례상 극히 이례적이다.
푸틴 총리는 피용 총리와의 회담에서 러시아와 유럽연합의 동반협력협정(PCA) 개정을 비롯해 러시아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관계 등을 논의했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일각에서는 나토와의 관계와 미국의 동유럽 미사일방어(MD) 기지 논의 등은 총리가 아닌 대통령이 다룰 사안이란 지적이 나온다. 러시아 일간 코메르산트가 29일 "푸틴 총리가 프랑스에서 대통령 수준의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보도한 사실도 이 지적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푸틴 총리가 첫 해외 방문지로 프랑스를 택한 것도 프랑스가 7월 EU 순회의장국이 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 결정이다. EU 의장국인 프랑스가 PCA 개정을 주도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사전에 양국 관계를 다지겠다는 의도다. 푸틴 총리는 대통령 재직시를 포함, 최근 1년 사이 3번째 프랑스를 공식 방문한 반면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프랑스를 공식 방문한 적이 없다는 사실도 푸틴의 대외 영향력을 고려한 결정임을 시사한다.
푸틴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고유가의 해법으로 제기된 러시아의 석유 증산에 대해 "국제 유가는 시장이 결정하는 것인지 러시아가 결정하는 문제가 아니다"며 선을 그었다. 대신 세계 2위의 산유국이자 1위의 천연가스 보유국인 러시아 에너지에 대한 프랑스의 투자를 요구하는 등 경제적 실익을 챙기려는 모습도 보였다. 러시아의 인권 상황에 대한 지적에 대해서는 푸틴은 "러시아의 인권 상황이 과장된 면이 많다"며 "인권은 대통령이 다룰 문제"라며 대통령에게 떠넘겼다.
지난주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중러 관계 구축을 위한 전략적인 선택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메드베데프의 중국 방문은 푸틴 총리가 대통령 시절에 다져놓은 양국 관계를 재확인한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푸틴 총리가 프랑스에서 환대를 받으면서 메드베데프의 중국 방문은 더 빛이 바래진 셈이다.
김회경 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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