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마시기를 좋아하는 남편이 요즘은 보이차에 푹 빠져 있다. 나도 옆에서 한 잔, 두 잔 마셔보니 맛도 그럴싸하고 우리 녹차와는 다른 색다른 맛이 느껴진다.
남편은 이곳저곳 보이차와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고, 보이차를 우리는 데 쓰이는 자사호(紫沙壺)를 중국 현지 상인으로부터 만만치 않은 가격에 구입해 오기도 한다. 보이차 가격을 슬쩍 보았는데 그것이 요지경이다. 한 편에 몇 만원부터 세월이 오래된 묵은 보이차는 수십, 수백 만원을 호가한다. 우리 녹차는 유통기한이 있어 일정기간이 지나면 마시지 않는데, 보이차는 발효차이기 때문에 오래 묵을수록 값어치가 올라간다니 재미있는 일이다.
우리나라 남도와 제주도에도 좋은 차밭이 많으니 그것으로 보이차를 만들면 품질도 좋을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값도 오를 것인데, 왜 우리나라에서는 보이차를 만들지 않는지 물었다. 그 대답은 이랬다.
보이차란 중국 윈난(雲南)성에서 나는 윈난대엽종의 찻잎을 가지고 만들어야 보이차라고 한다. 중국의 다른 지역에서도 보이차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만드는 차들이 많이 있는데, 그것은 윈난대엽종의 찻잎으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보이차라고 하지 않고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고 한다. 결국 우리나라는 원재료인 윈난대엽종의 찻잎이 없어 보이차를 만들 수가 없으며, 보이차를 만들 수 있는 곳은 전 세계에서 중국 윈난성 단 한 곳뿐이라는 이야기다.
차를 우리는 도구인 자사호에 대해서도 물었다. 우리나라도 도자기에 관한 한 전 세계 어디에 내어 놓아도 빠지지 않는 역사와 기술이 있으니, 비싼 가격에 중국산 자사호를 사 올 것이 아니라 여주나 이천에서 우리 도공들이 만들면 훨씬 좋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 대답도 보이차와 유사했다.
자사호라 함은 중국 장수(江蘇)성 의흥 지역의 황룡산에서 나오는 원석을 가공한 니료로 만든 것만을 자사호라 인정한다고 했다. 중국의 다른 지역에서도 유사한 원석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만든 것은 자사호라 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나라에는 원재료인 중국 황룡산의 자사 원석이 없으므로 자사호를 만들 수 없으며, 결국 보이차와 마찬가지로 자사호를 만들 수 있는 곳은 전 세계에서 중국의 의흥. 단 한 곳뿐인 것이다.
중국인들은 예전부터 원재료가 갖는 중요성을 간파한 듯하다. 물건의 가치가 외형뿐 아니라 원재료에 있음을 철저히 각인시켰다. 이러한 인식 아래 원재료를 독점함으로써 나 아니면 누구도 이 물건을 만들 수 없게 하고, 결국 그 물건에 관해서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원리를 알고 있는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온다고 한다. 쇠고기는 우리 민족에게 정말 중요한 식재료이다. 오죽하면 라면에도 쇠고기 라면이 있겠는가? 고깃국에 흰 쌀밥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때의 고깃국은 당연히 쇠고기이다. 갈비찜은 당연히 소갈비로 만든다고 생각하므로 소갈비찜이라 하지 않고 그냥 갈비찜이라고 지칭한다. 육회도 쇠고기로 만든 육회라고 하면 사족이 된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문득 드는 의문이 있다. 쇠고기가 우리 음식에서 그렇게 중요한 식재료라면 우리 한우가 아닌 미국산 소로 만든 설렁탕은 진짜 우리 설렁탕일까? 맛은 비슷할지 몰라도 원래부터 사용하던 그 한우는 아닌데 그것을 설렁탕이라고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보이차와 자사호에서처럼 중국인들이 수천 년 전부터 알고 있던 원재료의 중요성을 우리는 아직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안진의 한국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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