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속으로 처리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에 대한 민심이 갈수록 악화하는 가운데 이 문제에 대한 합리적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기존에 합의된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을 흔드는 재협상은 어렵다는 입장이나 시민단체나 야권은 한미 간 합의의 원천무효화나 전면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어 이대로라면 아무런 답을 찾기 힘든 형편이다. 2일에는 한나라당에서도 재협상 요구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하지만 여야 상당수 의원, 국제법이나 협상 전문가들은 정부가 재협상이든, 추가협상이든 미국과의 적극적 협의를 통해 우리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접점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사실 미국 입장에서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등 민감한 안보ㆍ경제 현안을 한국과 함께 풀어가야 하는 처지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우리 국민의 반감 확산은 자칫 장애가 될 수 있다. 나아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국내의 거부감이 외신을 타고 세계에 전파되는 상황은 다른 나라에 수출하는 미국산 쇠고기의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어 미측도 국내 분위기를 마냥 무시하기는 어렵다.
국내에 진출한 미국기업 일각에서도 쇠고기 파문이 미국 상품에 대한 불신으로 비화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미국 내에서는 “한국인들이 우리가 먹는 쇠고기를 광우병 소로 매도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동맹관계를 고려한 미측의 전향적 입장 전환 여부가 쇠고기 파문 진화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국제법 전문가인 이화여대 법대 최원목 교수는 “국민의 우려를 최소화하는 차원에서 정부가 원산지 표시와 함께 수입소의 월령(나이) 표시를 의무화하고, 향후 미_일, 미-대만의 협상 결과에 맞춰 우리 측의 위생조건을 재협의한다는 내용으로 미측과 추가협상을 벌여야 한다”며 “월령 표시는 T본스테이크 외에는 합의문에 규정돼 있지 않은 만큼 미측도 충분히 양해가 가능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외교 관리는 “월령과 위험물질을 기준으로 수입시기를 조정하는 방안을 미측과 협의해야 한다”며 “비록 재협상에 속하지만 동맹의 정신에 기초해서 한미가 적극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야도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한미당국의 과감한 노력을 주문하고 있다. 전 통일외교통상위 소속인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은 라디오 시사프로에 출연,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 수입량이 5%도 안되기 때문에 이 문제를 바꿔내는 것부터 시작이 필요하다”며 “미국을 충분히 설득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 외교통상부 장관인 송민순 통합민주당 의원은 “미국도 동맹인 우리의 필요를 존중해야 한다”며 “정부도 재협상이냐, 아니냐에 매몰될 게 아니라 과감하게 국민의 우려를 불식시킬 방안을 미측과 협의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진황 기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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