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 있는 서점 이음아트(대표 한상준)에선 희곡, 시, 소설, 서평 등 전방위 창작 활동을 펼치고 있는 장정일(46)씨가 초청된, 작지만 특별한 문학 행사가 열렸다.
기존의 작가 초청 행사가 대부분 작가 강연이나 작품 낭독, 청중과의 질의 응답으로 단조롭게 진행되는 데 반해, 이날 행사는 초청작가 작품을 모티프 삼은 연극, 무용극, 음악 등 다채로운 공연으로 참석한 100여 명 관객의 오감을 두루 자극했다.
‘장정일의 희곡 이야기’로 이름 붙여진 이날 행사는 이음아트와 책 전문 뉴스 사이트 북데일리가 지난달부터 매월 열고 있는 ‘젊은 낭독회’의 두 번째로, 장씨가 작년 12월 내놓은 두 번째 희곡집 <고르비 전당포> 를 중심으로 꾸며졌다. 연극연출가 최창근씨가 행사 연출 및 사회를 맡았다. 고르비>
극작가 장정일과의 만남
장씨는 총 3편의 희곡집 수록작 중 표제작이 장편소설 <보트 하우스> 를 각색한 것임을 밝히며 작가가 체감하는 희곡과 소설 쓰기의 차이점을 설명했다. 보트>
그는 “소설에선 시공간, 인물을 제약없이 탄생시킬 수 있지만, 희곡은 실제 연극 상연을 염두에 둬야 하므로 요소들을 최대한 경제적으로 쓰게 된다”며 실제로 <보트 하우스> 의 설정을 표제작에서 어떻게 간략화했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줬다. 보트>
장씨는 “시, 소설과 달리 희곡을 쓸 땐 여러 현실적 목적을 염두에 두게 될 때가 많다”면서 또다른 수록작 <일월> <해바라기> 를 쓰게 된 계기를 솔직히 밝혀 관객의 흥미를 끌었다. 해바라기> 일월>
장씨는 “IMF 이듬해라 100만원도 빌리기 힘든 시절, 절박하게 1,500만원을 마련해야 할 일이 생겼다”며 “꼭 그만큼의 상금이 걸린 국립극장 공모전을 노리고 쓴 작품이 <일월> ”이라고 말했다. 아깝게 떨어졌지만, 다행히 다른 기회로 필요한 돈을 구할 수 있었다고. 일월>
<해바라기> 에 대해선 “ <내게 거짓말을 해봐> (장씨는 이 소설로 인해 구속되는 수난을 겪었다)와 같은 해인 1996년 발표한 희곡인데 ‘대박’을 터뜨려 보려고 썼던 작품”이라며 웃었다. 극작가 이만희씨가 쓴 <불 좀 꺼주세요> 가 92~94년 장기 상연되며 공전의 흥행 성적을 거둔 데에 자극 받아 쓴 희곡이라는 것. 불> 내게> 해바라기>
장씨는 문학의 원체험을 묻는 독자 질문에 “어렸을 땐 수도사처럼 사는 것이 꿈이었다. 뭔지 잘 모르면서도 술, 담배, 섹스는 절대 안할 거라고 다짐하곤 했다”면서 “내 작품을 들여다보면 어린 시절 바람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일테면 사도-마조히즘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거기에 성교 과정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평생 담배를 입에 안댔고, 핸드폰, 신용카드, 운전면허증도 없이 살고 있으니 내 삶에도 수도사로 살고 싶던 어릴 적 꿈이 얼마간 투영된 듯하다”고 말했다.
오감을 깨우는 낭독 공연
이날 행사엔 장씨가 직접 <해바라기> 의 한 구절을 낭독한 것을 포함, 수록작을 모티프 삼은 네 종류의 공연이 열렸다. 해바라기>
연극배우 최규하 정가이 김선진씨, 소설가 서준환씨는 표제작을 약식 연극으로 공연했다. 이들은 작품 주요 대목을 골라 배역을 나눠 맡고 간략한 행동과 함께 대사를 주고 받았다.
인디문화 기획사 ‘츄리닝바람’ 소속인 시인 김경주, 무용가 곽혜리 최대웅씨는 <해바라기> 의 한 장면을 가면극, 마임, 무용을 결합한 독특한 퍼포먼스로 표현했다. 해바라기>
소설을 비롯한 문학 텍스트에 곡을 붙여 공연하는 3인조 밴드 북밴(제갈인철 김대욱 이수진)은 표제작과 <해바라기> 로 만든 두 곡을 어쿠스틱 기타 연주와 노래로 선보였다. 해바라기>
‘젊은 낭독회’ 행사 기획을 주도한 김경주 시인은 “작품 낭독회가 활발히 열리는 외국 작가들은 낭독 분량을 모두 외우고 세련된 퍼포먼스를 준비하는 등 프로페셔널한 자세로 관객에게 다가선다”면서 “우리 문학계도 상투적인 낭독 행사를 넘어 작가와 관객이 긴밀히 교감할 수 있는 형식을 다각도로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 장정일 "시인·소설가 4인 공동 희곡집도 마무리 작업 중"
장씨는 행사 직전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나를 비롯한 시인ㆍ소설가 4명의 공동 희곡집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출간 작업엔 소설가 정영문 서준환씨와 김경주 시인이 함께 참가한다. 현재 서씨와 김씨는 집필을 완료했고, 장씨와 정씨는 마무리 작업을 진행 중이다.
정씨는 장막희곡 <당나귀들> 로 2002년 국립극장 창작공모에 당선돼 극작가로 데뷔했고, 서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졸업 후 서강대 대학원에서 프랑스 희곡을 공부했다. 김씨는 같은 제목의 자작시를 각색한 희곡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 를 작년에 이어 올해도 무대에 올린 바 있다. 한편 소설가 한강씨는 모노드라마 대본 초고를 완성해 가다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늑대는> 당나귀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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