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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은의 名品 먹거리] 유명인이 단골… 분위기가 환상… 맛+에 더 반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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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은의 名品 먹거리] 유명인이 단골… 분위기가 환상… 맛+에 더 반하겠네

입력
2008.06.03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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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먹거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맛도 중요하지만, 그 음식이 가진 고유한 이야기와 세월이 쌓아준 내공, 그 맛을 지지해주는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임금님이 드시던 밥이었더라, 이름난 문인이 즐겨마시던 술이었더라 하는 식의 이야기는 음식의 맛을 돋우는 훌륭한 바람잡이다.

그걸 맛보기 위해 수많은 이들이 드나든 문지방, 그 닳고 닳은 문지방은 '리모델링'을 하지 말고 백년, 천년 두어야 한다. 그래야 '이 도시에서는 꼭 이것을 맛보고 떠나야 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게 된다. 여기에 하나 더! 적당한 포장이 필요하다. 담음새가 특허감이라든지, 먹는 분위기가 멋들어진다든지 하는 것 말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만난 두 가지 메뉴가 그 예를 보여준다.

'돔'의 해산물 한 접시

파리의 몽파르나스라는 지역의 대로변은 집집마다 역사의 현장이다. 피카소의 단골집, 헤밍웨이가 들렀던 바, 장 콕토가 앉아서 스케치를 하던 레스토랑 등이 줄줄이 이어진다.

그 가운데 화려한 외관을 자랑하는 '돔'(le dome)이라는 레스토랑은 해산물 전문이다. 오랜 세월, 많은 문인들과 예술가들이 수다를 떨고, 허기를 채우던 곳이다. 대표적인 메뉴는 '한 접시 해산물'과 '부야베스'.

우리 식의 해물탕이나 생선찌개에 해당하는 부야베스가 돔에서는 꽤나 고가의 메뉴다. 2인 이상만 주문을 받고, 1인당 가격이 만만치않다. 맛도 맛이지만, 포인트는 그 서비스가 일품이라는 거다.

우선, 넓적한 사기 냄비에 통째로 조리된 생선과 향기 좋은 국물이 나온다. 테이블 앞에서 뚜껑을 들어 그 모양새를 한 번 보여주고, 손님 앞에서 능숙한 손질이 시작된다.

생선은 은 접시에 건져 살만 포 뜨듯 발라낸 후 접시에 담고, 여기에 적당량의 국물을 부어준다. 이렇게 손질하여 깔끔한 1인용 그릇에 담아주니, 먹으면서 손으로 가시를 바를 일 없고, 뭐랄까 음식이 조금 더 고급스러워지는 것이 사실이다.

돔의 주 경쟁 부문은 바로 한 접시에 장하게 차려 나오는 해산물. 쟁반 만한 접시에 얼음과 해초를 깔고, 굴을 종류별로, 생합과 기타 조개류, 골뱅이, 살짝 쪄낸 잔 새우 등을 가득 채운다.

제주도 '해녀의 집'에서 해녀 아주머님들이 공짜로도 주시는 홍삼, 멍게, 개불, 성게알 등이 생각난다. 따져보면 같은 음식. 아니, 바다가 먼 파리 한복판의 해산물보다는 제주도의 날것이 훨씬 맛있지. 그렇지만 두 곳의 가격 차이는 상당하다.

한국의 횟집이나 해산물 전문점에서 흔히 '쓰키다시'라고, 국적 불명의 공짜 안주로 통하는 모둠 해산물이 어디에서는 접시 당 5만원이 넘는 고급 먹거리로 통하고 있다.

'오 피에 드 코숑' 의 돼지 족발

파리 정 중앙 '레 알'(les halles)이라는 동네는 수산물 수레, 도축업자, 야채상인 등이 모여 장사를 하던 곳이었다. 바로 그 자리에 '오 피에 드 코숑'(Au Pied de Cochon)이라는, 직역하면 '아기돼지의 발치에서'라는 오래된 식당이 있다.

신기한 점은 그 식당의 전문 메뉴가 '돼지족'이라는 사실과 24시간 영업이라는 사실이다. 특히 50년 이상 그 조리법이 한결같다고 자랑하는 '삶은 부위'라는 메뉴는 우리의 돼지국밥에 가까워 놀라울 뿐이다.

황동 냄비에 가득 담겨 나오는 모양새는 내용물에 비해 고급스럽다. 귀, 볼살, 기타 살점 등이 오랜 세월 끓고 있는 육수에 푹 익어 흡사 젤리와 같다. 대접을 앞에 두고 땀을 흘리며 퍼먹는 대신, 황동 냄비를 곁에 두고 한 점씩 두 점씩 접시에 덜어 와인이나 맥주와 먹는다. 국물에 송송 썬 파만 확 뿌려 넣으면 영락없는 국밥인데 이렇게도 먹는구나 하고 놀라게 된다.

밤기차를 타고 새벽에 도착한 유럽인들은 24시간 밥집이 없는 파리에서 반드시 이곳을 찾아 허기를 달랜다. 축구 경기를 보느라 밥때를 놓친 이들이 경기가 끝난 후 우르르 몰려오기도 한다. 우리에게는 익숙하지만, 서양인들에게는 이국적인 메뉴일 족발을 구경하러 미국 관광객들은 단체로 자리를 잡기도 한다.

삶은 돼지 말고도, 푹 익힌 어린 돼지의 발을 빵가루 묻혀 익혀낸, 겉은 바삭하고 속은 흐물거리는 묘한 식감의 족발도 인기다. 모든 메뉴의 가격은 2만~3만 원대. 양에 비해 비싼 편이다. 제주시에서 '아강발'이라는 아기돼지 발 삶은 것을 8,000원어치 시키면 한 접시에 가득인데, 부산 내려가서 돼지국밥 한 그릇 시키면 얼마나 맛있고 푸짐한데, 아쉬움만 더한다.

■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먹거리

자,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의 관광 포인트는 '먹거리'로 더 중점을 둘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한 상 떡 벌어지게 차려내는 한정식 코스만이 다가 아닌, 시장에서 부쳐 먹는 빈대떡이나 갓 따온 싱싱한 해물, 50년 된 족발 등이 그것이다. 다른 문화권에서 우리를 찾아오는 이들은 우리 살아가는, 살아온 모습을 체험하고 싶어 한다.

그 가장 쉬운 방법은 먹어보는 것. 한국관광에 관한 어느 책자를 봐도 한정식이나 대장금의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한정식, 신선로, 김치, 갈비, 불고기, 냉면. 진정 우리가 자랑할 먹거리는 이것뿐일까? 우리에게는 외국에 비해 저렴하고 맛있는, 게다가 역사가 오래된 먹거리가 잔뜩 있다.

박재은ㆍ음식 에세이 <밥 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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