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현대인을 어루만지기 위해 등장했던 뉴에이지(New age) 음악의 번성은 헤드뱅잉은커녕 공연장에서 손뼉치는 것조차 부담스럽던 국내 음악팬들에겐 반갑기 그지없었다.
비록 대부분의 뉴에이지 풍 음악이 ‘생활 속 배경음악’으로 머물렀던 게 아쉽지만, 녹색에 가까운 멜로디들은 호숫가에 놓인 안락의자처럼 힘겨운 21세기 인에게 큰 위안이었다. 국내 뉴에이지 인기의 선두에 섰던 피아니스트 앙드레 가뇽과 2인 그룹 시크릿 가든이 각각 신보와 공연 소식으로 국내 팬을 찾았다.
■ 가뇽 "가장 오랜시간 공들인 앨범 김광석의 '거리에서' 큰 애정"
6년 만에 앙드레 가뇽이 내놓은 새 앨범 <토와니> (5월22일 발매)를 보자 약간의 샘이 났다. 1997년 <모놀로그> 로부터 10년 넘게 그에게 충성했던 한국 팬을 두고 일본인에게 애정을 바친 이번 신보(‘토와니’는 ‘영원히’라는 뜻의 일본어) 곳곳이 일본의 정서를 떠올리게 하는 멜로디로 꾸며져 있어서다. 모놀로그> 토와니>
하지만 첫 곡 ‘오리가미’ 에서 시작되는 가뇽의 음색은 여전히 푸른 하늘처럼 청량하고 로맨틱하기에 불만은 사라진다.
가뇽은 이메일로 이뤄진 인터뷰에서 “지난 몇 년 동안 한국에서 초청을 받은 적이 있지만 안타깝게 날짜가 맞지 않아 공연을 갖지 못했다. 조만간 스케줄이 잘 맞아지길 바랄 뿐”이라며 한국 방문 의지를 보였다.
가뇽은 이번 앨범이 자신의 음악을 기다려주고 응원해 준 오랜 팬들에게 보내는 감사의 선물로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음악을 시작한 이래 가장 오랜 작업기간이 소요된 앨범입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이 앨범을 준비하면서 정말 수 많은 곡들을 만들었어요. 그중 제가 생각한 앨범의 성격과 가장 잘 어울리는 곡들만을 골라 꾸미느라 힘든 과정을 겪었죠.”
그는 우리 가요 ‘가시나무’ ‘마법의 성’ 등을 연주하고 이전 앨범에 담기도 했다. 한국적 정서와 그의 감성이 많이 닮아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처음으로 ‘마법의 성’을 들었을 때가 생각나요. 그 곡을 듣자마자 바로 나만의 피아노 버전으로 연주하고 싶다는 느낌이 깊게 박혔죠.
‘거리에서’ 라는 한국 곡에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데 슬프게도 이 아름다운 곡을 불렀던 가수(고 김광석)가 더 이상 우리와 함께 있지 않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이 곡이 더 아픕니다.”
가뇽은 한국 뮤지션과의 교류 계획에 대해 묻자 가수 소냐와의 경험을 떠올렸다. “주로 호수 근처에 있는 집에서 음악을 만드는 버릇이 있는 저에게 지구 반대 편에 살고 있는 음악인들과 함께 작업하는 일이 쉽지는 않겠죠. 하지만 한국 작사가들이 노랫말을 쓰고 제가 곡을 붙이는 일이라면 즐거울 것 같아요. 소냐라는 정말 노래 잘하는 한국 가수의 앨범을 위해 곡을 썼던 기억이 새롭네요.”
가뇽의 곡을 듣고 있으면 한 폭의 수채화가 그려진다. 음악이 지고 있을 법한 무게는 깃털처럼 가볍고 선율이 담아야 할 스토리는 듣는 이가 마음대로 채워 넣도록 비워져 있기 때문은 아닐까.
“제가 사는 캐나다는 광활한 대지와 계절마다 바뀌는 자연이 아름다운 곳이죠. 이런 자연이 굉장한 영감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참 신기한 건 아무 것도 없는 빈 마음이 주변 환경보다 더 큰 영감을 준다는 것이죠. 그래서 작곡을 할 때면 좋은 풍광을 찾기보다 마음을 비우고 음악이 나를 찾아오기를 기다리죠. 아마도 이런 과정이 저의 음악이 아름다운 영상으로 비쳐지는 이유이지 않을까요.”
■ 시크릿 가든 "한국팬들의 사랑 잊지 못해 친근하고 새로운 공연 될것"
노르웨이 출신 2인조 그룹 시크릿 가든(롤프 러블랜드, 피오뉼라 쉐리)은 뉴에이지 음악의 전성기였던 90년대 중ㆍ후반을 대표하는 뮤지션이다.
번잡한 일상을 잠재우기 위해 들어선 도심의 카페에 조지 윈스턴과 유키 구라모토의 피아노 선율이 울리기 시작하면 무심코 돌아가는 라디오 채널에선 곧이어 시크릿 가든의 신비로운 멜로디가 들리곤 했다. 성장의 절정에 오르느라 심신이 피곤했던 그 시절의 대중은 너나 할 것 없이 휴식을 떠올리는 이들의 음악에 빠져들었다.
96년 처음 내한했던 이들이 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공연을 비롯해 울산(5일), 광주(6일), 대전(8일), 마산(10일)에서 세번째 한국무대에 오른다. 비밀의 정원을 거니는 꿈을 꾸듯, 비현실적인 몽상을 떠올리게 하는 시크릿 가든의 롤프 러블랜드를 내한에 앞서 이메일로 만나봤다.
시크릿 가든의 멜로디는 백색에 가깝다. 러블랜드의 건반과 쉐리의 현이 엮어내는 음율은 마치 흰옷을 입은 채 환자의 마음을 달래는 듯한, 치유의 인상이 깊다는 말이다.
"일본에 갔을 때 우리의 음악을 힐링(healing) 뮤직으로 분류한 것을 보고 흥미롭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치유의 목적으로 음악을 만들지 않쨉?그렇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하지만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는 게 음악의 가장 큰 힘이니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죠."
이들의 곡 '녹턴' '유 레이즈 미 업' 등이 드라마와 CF 등에 많이 삽입되면서 한국에서의 인기는 특히 대단했다. 러블랜드는 한국공연의 추억에 대해 "2004년 내한무대는 생애 최고의 공연 중 하나였다"고 말할 정도이다.
"음반 판매량이나 공연 관객수만 보아도 우리가 얼마나 한국 팬들의 사랑을 받는 지 한눈에 알 수 있죠. 글쎄요. 인기비결이라면 아마도 시크릿 가든의 멜로디에 담겨있는 작은 이야기들이 아닐까요. 우리는 음악 자체가 훌륭한 언어라고 생각해요. 그 언어로 뭉친 이야기에 음악적 열정과 감동을 불어넣으려 노력했고 이러한 진정을 한국팬들이 알아주신 것이라 믿어요."
이번 내한무대는 다른 스타급 뮤지션들의 경우와 달리 '지방순회' 공연으로 이뤄진다. 일종의 팬 서비스라 여겨질 정도로 꽉 짜인 시크릿 가든의 공연은 이전과 어떻게 다를까.
"이번 한국 투어는 예전 스타일과 새 스타일이 잘 믹스된 공연이라 보시면 됩니다. 지난해 노르웨이에서 내놓았던 <인사이드 아임 싱잉> 에 담긴 수록곡들도 선보일 예정입니다. 객원보컬 트레이시 캠벨과 에스펜 그로타임이 한국 투어에 함께할 계획이고요." 인사이드>
팀 이름은 프란시스 버넷의 소설 <시크릿 가든> 에서 따온 것으로 비밀스럽고 매우 개인적인 음악을 추구한다는 뜻을 담았다고 러블랜드는 말한다. "13년 동안 만들어온 여섯 장의 앨범은 작곡, 녹음, 연주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어요. 한 장의 앨범에 평균 2년 정도의 노력을 기울였죠. 마치 여행일지와 같이 기록해온 우리의 음악은 삶의 전부입니다." 시크릿>
양홍주 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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