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치마를 입은 여인 채색 벽화 ‘아스카(飛鳥) 미인’으로 유명한 일본 나라(奈良)현 다카이치(高市)군 다카마쓰(高松) 고분이 지난달 31일부터 6월 8일까지 일반 공개되고 있다. 1972년 일본내 첫 벽화고분 발견으로 고고학 붐을 일으킨 이후 시민 대상 실물 공개는 처음이다.
하지만 이번 공개는 안타깝게도 다카마쓰 고분 내에서 벽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니다. 발견 직후부터 온ㆍ습도 조절 장치를 설치하고 관리ㆍ연구자 이외 출입을 엄격히 통제했음에도 불구하고 벽화가 퇴색, 변질하는 열화(劣化)를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한 일본 문화청이 보존수리를 위해 지난해 석실 벽면과 천정의 돌을 모두 해체해 옮겼기 때문이다.
7세기 후반 8세기 초 무덤으로 고구려나 백제 왕족의 것일지 모른다는 학설도 있는 다카마쓰 고분은 발견 당시 동, 서, 북벽과 천정의 선명한 벽화로 일본 고고학계에 충격을 주었다. 동ㆍ서벽에는 대칭으로 남녀 군상과 해ㆍ달, 청룡ㆍ백호도가, 북벽에는 현무가, 천정에는 별자리가 그려져 있으며 모두 일본 국보로 지정돼 있다.
벽화 훼손이 처음 확인된 것은 2002년. 고분 시설 수리 기술자가 멸균 방호복을 입지 않은 채 석실을 드나든 뒤 벽화에 대량으로 검은 곰팡이가 피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책위가 구성돼 수년에 걸쳐 상태를 관찰한 결과, 현상태로는 보존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2005년 해체 후 복원을 결정했다.
지난해 4월 3일부터 두 달에 걸쳐 천정석을 시작으로 석실 내 돌 16장이 고분 근처 복원작업시설로 옮겨졌다. 영안실을 연상케 하는 이 작업실에는 ‘시신’처럼 벽화가 그려진 다카마쓰의 석재 캔버스가 16개 작업대 위에 한 장씩 누워 있다.
도쿄문화재연구소 등의 복원수리 전문가들은 어두운 석실 내에서 자세히 보이지 않던 곰팡이의 범위와 상태를 일단 정확히 확인했다. 서벽의 ‘아스카 미인’ 벽화는 석재 뒤쪽에서 습기가 침투해 그림의 바탕에 칠한 회반죽이 함몰된 부분을 새롭게 발견했다.
천정 벽화를 시작으로 곰팡이 제거는 하루 5㎝ 정도다. 그만큼 조심스럽다. 난관은 고분 내 높은 습도 때문에 벽화 전체를 덮고 있던 젤 상태의 미생물막(바이오필름)이다. 석실 바깥으로 석재를 옮기자 습도가 낮아지면서 이 막이 굳어버렸기 때문이다. 일단 약제를 이용해 미생물 막의 분자를 차단하는 방법을 연구 중이라고 한다.
고분 발견 당시부터 제기됐던 ‘원상태 보존’과 ‘해체 후 수리복원’ 논란도 여전하다. 일본고고학회가 회원 77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고분의 해체는 파괴’라는 응답자가 57%였다. 벽화 보존을 위해 다른 방법이 없지 않느냐는 답은 35%에 그쳤다.
다카마쓰 고분의 수리복원은 앞으로 10년에 걸쳐 진행된다. 성과는 고구려 고분 벽화 보존에 고민하는 남북한에도 좋은 참고가 될 전망이다.
도쿄=김범수 특파원 bskim@hk.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인터넷한국일보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