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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사회/ (上) 고독한 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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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사회/ (上) 고독한 노인들

입력
2008.06.03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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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 A경찰서 B경위는 여름 휴가철이 다가올수록 불안하다. 지난해 7~8월의 아픈 기억 때문이다. B경위에 따르면 휴가철에는 부모와 연락이 끊겨도 자녀들이 크게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인지, 지난해 여름에만 노인 고독사(孤獨死)를 3건이나 처리했다. A경사는 "평생 힘들게 살다가 외롭게 죽음을 맞이한 분들을 보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며 "올해에는 그런 분들을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 최근 남편과 사별한 C할머니는 '우리가 모시겠다'는 3자녀의 요구를 뿌리치고 혼자 살고 있다. 보유 재산이 20억원이 넘어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는 C할머니는 "며느리가 잘못하는 건 아니지만, 서로 불편하게 함께 살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같이 살지 않는 만큼, 생전에 재산을 분배해 줄 생각도 없다"고 말했다.

고독의 끝자락에 저소득층 독거 노인의 죽음이 서있다. 죽음의 절벽에 선 그들에게 '가족'이라는 끈은 끊어진 지 이미 오래. 강병만 '한국 노인의 전화' 사무국장은 "최근 3~4년간 1960년대와 70년대 한국 산업화의 주역이었던 1930년대 출생자의 사망이 늘면서 임종하는 가족 없이 숨진 뒤, 며칠이 지나서야 발견되는 노인이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국장에 따르면 노인 고독사는 최근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해 아직 정확한 통계조차 없지만, 전년 대비 매월 30~40%씩 늘어나고 있다. 그는 "30년대 출생자들은 '마지막으로 부모를 모시고 살다, 최초로 자식에게 버림받는 세대'라는 말이 있었는데, 최근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고 전했다.

'나도 혼자 죽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지 스스로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 상조(相助)업체 K사 관계자는 "과거에는 30~40대가 대부분이었으나, 3~4년 전부터 노인들의 가입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하루 평균 200여명이 가입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40명 가량은 노인이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노인 가입자는 '입회비로 250만원 정도 내면 내가 죽어도 업체에서 알아서 장례식장 예약, 부고 알리기, 손님 접대, 발인, 사망신고 등을 모두 해주느냐'고 꼼꼼히 묻는다"고 말했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다르지만 '자식 농사'를 잘 지은 중산층 이상 노인들도 혼자 사는 쪽을 선택하고 있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사는 김모(73ㆍ여)씨는 "자녀에게 미리 재산을 나눠준 뒤 홀대 받고 사는 어떤 노인의 딱한 소문이 분당 지역에서 크게 퍼졌다"며 "차라리 자식과 떨어져 혼자 살겠다는 게 요즘 노인들의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런 경향은 객관적인 설문 조사로도 확인된다. 한국은퇴자협회에 따르면 최근 60대 이상 노인 11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0%가 '자녀 부양에 대해 기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또 '경제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자녀에게 기대지 않고 혼자서 해결하겠다'는 비율도 74%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자녀들이 포기한 효도만큼을 국가가 대신해주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효도라는 규범이 사람들의 행동에 많은 영향을 끼쳤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부양의 책임감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다"면서 "고령화가 급진전되고 있는 만큼 노인들이 기초적 의식주만이라도 해결할 수 있도록 사회적 부양 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 10명중 1명은 '1인 가구'

한국인들이 갈수록 고독해지고 있다. 가족이 없거나, 있어도 유대를 끊은 채 혼자 삶을 영위해 가는 이른바 ‘나홀로 족’이 전체 인구의 10%를 넘어 50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노인의 자살률이 높아지거나 혼자 외롭게 죽어가는 고독사(孤獨死)가 늘어나고 ‘나홀로 족’에 의한 범죄가 증가하는가 하면, 대인관계를 피한 채 인터넷과 게임에 몰입한 나머지 현실과 가상세계를 혼동한데서 겪게 되는 병리적 현상도 확대ㆍ심화하고 있다.

1일 통계청과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에 따르면 1985년 66만명 가량에 불과하던 ‘나홀로 족’(1인 가구)은 20여년만에 430여만명으로 6.5배나 증가했다.

2005년말 현재 전 국민이 모두 가입한 건강보험 납부자 가운데 피부양자 없이 보험료를 내는 사람은 652만명이다. 이들 중 맞벌이 부부 비율(여성 경제활동 참가율 66.2%)을 감안하면 ‘나홀로 족’은 437만명에 달한다. 여기에 의료급여 대상인 저소득층 노인, 기러기 아빠 등 통계에 잡히지 않는 부분과 2006년 이후 혼자가 된 사람까지 합하면 2008년 5월말 현재 ‘나홀로 족’은 총인구(4,860만명)의 10%가 넘는 490만~500만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김중섭 경상대 사회학과 교수는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가족해체 현상과 취업ㆍ교육경쟁의 격화, 개인주의 확산 등이 맞물리면서 ‘나홀로 족’이 크게 늘었다”며 “전통사회에서는 금기시 되던 독신과 이혼에 대한 사회의 긍정적 분위기도 한 요인”이라고 말했다.

‘나홀로 족’의 증가는 한국인들의 삶의 지평을 바꿔 놓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중에서도 ‘노인과 죽음’을 가장 심각한 주제로 꼽고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상대적으로 사회적 약자일 수 밖에 없는 노인층의 자살률이 최근 10년 사이에 두배나 증가하고,가족의 위로를 받지 못한 채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고독사 노인’ 역시 급증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청장년층 일부 ‘나홀로 족’의 범죄, 경제 사정 때문에 맞벌이에 나서야 하는 부모로부터 충분히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나는 ‘열쇠 아동’이 300만명을 넘어선 것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나홀로 족’의 증가는 새로운 서비스 산업을 양산하고 있다. 주택 시장에서는 1인 거주자를 위한 1인용 오피스텔, 원룸형 아파트ㆍ빌라 건설이 붐을 이룬지 오래다. 혼자 사는 이들을 위해 ‘1인 식탁’을 갖춘 식당들이 늘어나고, ‘셀프 빨래방’등 ‘나홀로 족’의 생활편의를 돕는 업종들도 증가 추세다. 24시간 편의점들은 ‘나홀로 족’이 간편하게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메뉴를 적극 개발해 내놓고 있고, 대형 할인점들은 1~2인용 소용량 상품만 모아 파는 ‘미니미니존’을 개설해 ‘나홀로 고객’을 유혹하고 있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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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 자살률 10년간 2.8배 껑충

혼자 사는 노인의 증가는 그 자체가 단순한 현상에 그치지 않는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외로움에 노인들이 자살의 길을 택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고, 궁핍한 생계와 상처받은 자존심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는 비율도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1일 통계청에 따르면 가족과 단절된 상태에서 혼자 사는 65세 이상 노인의 비율과 이들 계층의 자살률은 정비례하고 있다. 1995년 34만9,020명에 머물렀던 독거 노인이 2005년 78만2,708명으로 두 배 이상 증가하는 것에 맞춰, 자살자도 95년 65세 이상 인구 10만명당 19.2명에서 2005년에는 53.6명으로 늘어났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구조가 과거 가족 기반에서 점차 개인 기반으로 변모하면서 대중 속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노인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면서 "자살률 등의 문제는 혼자 사는 삶과 큰 관계가 있다"고 분석했다.

노인 범죄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자상한 노인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는 상상하기 힘들었으나, 이제는 각 연령층 중 범죄 증가율이 가장 높아 경찰을 괴롭히는 계층이 됐다.

실제 경찰에 따르면 95년에는 61세 이상 노인이 저지른 범죄가 3만2,534건이었으나, 2005년에는 7만4,770건으로 2.2배 늘었다. 이에 따라 전체 범죄에서 노인 범죄가 차지하는 비율이 95년에는 1.8%에 불과했으나, 2005년에는 3.8%로 늘었다.

경찰 관계자는 "가족들의 지지와 지원을 받으면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노인이 절도, 폭행 등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는 드물다"며 "범죄를 저지르는 노인 대부분은 혼자 살며 궁핍하게 지내는 노인"이라고 말했다.

김중섭 경상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부가 몇 년 전부터 사회복지사와 간병인 등을 고용해 독거노인들을 돌봐주고 있지만 복지 수준은 여전히 미미하다"면서 "우리나라보다 먼저 고령화를 맞은 선진국들이 노인 돌보기를 정부 주도로 이뤄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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