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로 집권 100일을 맞는 이명박 정부에는 정치가 없었다. 좌우를 살피고 위 아래를 다독이며 합의점을 찾아가는 전(全) 방위 소통이 아닌, ‘나를 따르라’ 식의 일방적 지시만 존재했다. 야당과의 대화 단절은 물론이고 여당도 소외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여의도식 정치’를 탈피하겠다는 현 정부의 실용정치가 당초 지향했던 목표점과는 달리 모든 사회적 이슈를 대통령이 직접 맞닥뜨려야 하는 부작용으로 나타났다.
독단의 불길한 사인은 정부 출범과 함께 단행된 인사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조각이나 청와대 수석 인선에서 대통령과의 인연, 대선 논공행상의 성격이 드러나고 검증 절차가 생략됐다. 결국 장관 내정자 3명이 부동산 불법 취득 등의 문제로 중도 하차했으며, 논문표절 의혹 등에 휘말린 청와대 박미석 사회정책수석이 한달 후 사퇴했다. 이 과정에서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S라인’(서울시 출신) ‘강부자’(강남 땅부자) 내각이란 비아냥이 나왔다.
광의의 인사로 볼 수 있는 한나라당의 4ㆍ9 총선 공천도 그랬다. 공천심사 내내 불공정 시비가 끊이지 않았고 결국 공천에서 탈락한 친박근혜 인사들이 탈당해 친박연대나 무소속으로 대거 당선됐다. 결과로만 보면 유권자들이 한나라당 공천의 잘못을 응징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계속 확대되고 있는 쇠고기 파문은 이명박 정부 100일의 정치부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결정체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가 안고 있는 복잡미묘한 위험성을 간과해 졸속협상의 우(愚)를 범하더니 국민반발이 거세져 촛불시위가 확산된 이후에는 어떻게 대처할지 몰라 허둥대는 위기관리 부재의 모습을 보여줬다. 위기가 고조되는데도 당ㆍ정ㆍ청을 이끄는 콘트롤 타워는 보이지 않았고 당연히 종합적이고 유기적인 대책도 나오지 못했다.
책임을 떠안는 각료도 없었다. 오히려 정교하지 못한 대처, 무분별한 언행으로 위기를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미 정부 고시를 오역(誤譯)하는 잘못까지 저질러 국민감정을 격분시켰고 김성이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은 “외교통상부가 책임이 있다”는 부적절한 발언으로 부처간 갈등을 촉발시켰다. 김경한 법무부장관과 어청수 경찰청장은 촛불시위에 대한 엄정 진압만 되풀이하다 오히려 화를 키웠다.
청와대도 우왕좌왕했다. 대통령 실장은 역할 인식도 제대로 되지 않은 행태를 보였고 정무ㆍ민정ㆍ홍보라인의 민심 읽기나 정무적 판단은 수준 이하였다.
결국 지난 100일의 정치는 ‘없었다’는 냉혹한 비평을 받아야 할 상황이다. 사상 최대 표차의 대선승리가 오만을 키우고 민심 경시를 초래, 위기를 자초한 것이다.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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