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한미 쇠고기 협상 및 자유무역협정(FTA) 청문회에 불려나가 곤욕을 치른 한 장관이 일전에 “정치인과 관료의 근본적 차이를 발견했다”며 한탄하듯이 말했다. 관료는 임명권자의 신임이 떠나는 순간 빛을 잃는 존재이지만, 정치인은 언제 어디서든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체라는 것이다. 지난해 참여정부가 한미 FTA를 타결했을 때 그 의미와 성과를 앞 다퉈 높이 사던 정치인들이 말과 태도를 180도 뒤바꿔 애꿎은 관료만 닦달하는 행태를 비아냥댄 얘기였다.
질나쁘고 값비싼 '강부자' 내각
기록을 들춰보면 수긍이 간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먹고 사는 문제를 위해 ‘큰 장사꾼의 안목’으로 결단했다고 말했을 때, 적어도 제도권 여권에선 찬사 일색이었다. 또 FTA 타결을 전후해 정부가 ‘국제기준에 따른 적절한 시기와 적절한 방법’으로 쇠고기시장을 개방하겠다고 미국에 약속했을 때도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최근 통합민주당의 정책위의장이 “우리가 여당 때 쇠고기 협상이 FTA의 선결과제인 것 알았으나 제대로 풀지 못했다”고 언급한 것을 보면, 새 정부 관료들이 구 여권의 돌연한 변신에 배신감을 가질 만도 하다.
이런 배경이 있기에, 그 장관은 정치권이 열심히 설거지하려는 정부의 뒤통수를 때리거나 발목을 잡지 말라고 강변했다. 관료는 적어도 상황에 따른 기회주의적 언행은 하지 않는다는 항변도 담았다. 그러나 새 정부가 지금 겪는 불행의 모든 씨앗은 바로 이 같은 아전인수식 해석에 있다. 설거지를 하다가 접시를 깨는 정도를 넘어 아예 부엌에 불을 내고도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전혀 깨닫지 못하니 말이다.
되돌아가서 얼마 전 노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 관광객들에게 이명박 정부의 ‘쇠고기 설거지론’을 공박한 것을 떠올려 보자.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이라고 발언 의도를 비판할 수 있으나, 자의든 타의든 그는 ‘쇠고기국에 쌀밥 말아먹는’ 것을 소원이자 상처처럼 간직해온 국민적 정서를 거스르지 못했다. 미국으로부터 ‘실망스럽다’는 외교적 무례에 가까운 압력을 받으면서도 미국산 쇠고기가 허용되는 선은 지킨 셈인데, 그는 그 과정에서 관료들의 역할이 컸다고 소개했다. 그 결과 한미 FTA는 실적이 아니라 실패 사례로 남았다.
하지만 매사 ‘프렌들리’ 잣대를 들이댄 새 정부는 지난 정부의 실패를 실적으로 만들겠다는 의욕만 넘쳐 실패의 원인을 따지고 대안을 마련하는 노력을 거의 기울이지 않았다. 효율과 성과를 중시하는 실용주의가 지배하고 그 핵심에 고소영, 강부자 라인이 들어앉은 정부로서는 ‘질 좋은 쇠고기를 값 싸게 먹을 수 있는’ 길을 굳이 둘러가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전체 유권자의 30%에도 못 미치는 지지로 집권했다는 두려움보다 500만 표 이상의 표차로 이겼다는 자만에 취했으니, 광우병 위험 따위는 정권을 잃은 세력의 푸념이자 시대착오적인 여의도 정치의 선동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새 정부의 핵심 진용은 정작 자신들이 ‘질은 형편없이 떨어지는데 값만 비싼 집단’으로 취급 받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 자질과 능력, 책임감과 윤리 등에서 무엇 하나 내세울 것이 없는 그들의 시야는 수없는 욕을 먹으면서 체질을 바꿔온 정치인 집단에 비하면 어린이 수준이다.
미국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오바마가 최근 한미 FTA가 심각한 결점을 가진 조약이라고 비판하며 부시 행정부에 비준안의 의회 제출을 보류하라고 요구한 것도 그들의 유치한 눈과 귀로는 ‘정치 게임’으로만 이해될 뿐이다.
능력ㆍ자질ㆍ윤리 모두 한계에
정치인을 자기 발광체라고 야유한 그 장관은 지금도 쇠고기 시위의 배후와 자금 출처에 궁금증을 가질 것이다. 수많은 서민들이 치솟는 기름값 때문에 못 살겠다고 해도, 편협한 경제논리와 배후타령을 앞세울 사람이다. 평생 기름값 걱정, 살 집 걱정을 해보지 않았으니 그게 이상할 것도 없다. 그런 사람들이 이 정부가 자랑하는 ‘베스트 오브 베스트’의 실체다. 그러나 국민들의 눈에 그들은 기껏해야 ‘베스트 오브 데어스(Best of Theirs)’일 뿐이다. 그들끼리의 세상이란 얘기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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