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마지막 블루오션’ 베트남 경제에‘8월 위기설‘이 나돌고 있다. 외채 상환이 어려워지면서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 구제금융을 신청할 지 모른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외부의 우려는 현지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베트남의 외환보유고는 지난해말 기준 200억 달러, 단기외채는 20억 달러 수준. 외환위기설이 나오는 것이 이상할 정도의 규모다. 정작 문제는 급등하는 물가와 무역적자 확대다. 그러나 이 역시 ‘급속한 경제발전의 성장 통(痛)’이란 현지의 시각이다. 이 때문에 베트남 현지에 진출한 우리나라 대다수 기업들은 ‘지금이 오히려 기회’라고 한목소리 들이다.
■위기설, 주범은 인플레와 무역적자
“사이공(호찌민시의 옛 이름)은 물가급등에 경악하고 있다. 올들어 베트남 전통 쌀 국수인‘포(PHO)’와 쌀, 기름 가격 등은 평균 1.5 배 올랐다. 중상층 직장인 평균 월급이 480만~800만 동(한화 30만~50만원) 수준임을 감안하면 폭동이 일어나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이홍배 법무법인 정평 베트남 호찌민 사무소 변호사)” 베트남의 공식적인 물가 상승률은 전년동기비 25.2%에 달한다. 하지만 일반 서민들의 체감물가인상률은 생필품의 경우 대부분 2배에 달한다.
수입증가세에 따른 무역수지 적자폭은 날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올들어 수출은 27% 증가에 그쳤는데 수입은 67%나 늘어 무역적자는 144억 달러에 달한다. 최신규 SK네트웍스 호찌민 지사장은 “일부 자금이 충분치 못한 업체들은 L/C를 발부 받지 못해 수입품을 통관 시키지 못하고 부두에 컨테이너 채 발이 묶여 있다”고 말했다. 권주수 우리은행 호찌민 지점장은 “우리나라 외환위기를 연상시키듯 현지 대출금리가 최고 18%까지 오르고 달러대출이 중단되면서 현지 진출 중소업체들의 자금조달이 사실상 막혀버린 상태”라고 말했다.
■ 외국인들의 리그는 사정이 달라
호찌민시의 명동으로 불리는 동코이 거리에 나란히 줄지어 늘어선 3개의 증권사 객장 셔터는 3일째 닫혀 있다. 지난해말 927선에 있던 베트남 비나지수는 5개월 만에 400선으로 떨어졌다. 우리나라 경우라면 자살소동까지 벌어질 만큼 폭동이 일어났겠지만 이곳은 TV에 단신뉴스로 처리될 정도로 별 관심이 없다. 전체 베트남 인구의 1%미만이 증시에 직접 관여하고, 증시자금의 40% 이상이 외국자본이라는 사실은 이 같은 분위기를 이해 시켜주기에 충분하다.
호찌민시의 온라인 매매선두주자인 VNDS증권의 트린후안 부본부장은 “베트남 증시는 아직 ‘아동기’시장으로 단기적인 위험에 취약한 단점이 있다”며 “증시의 주체 세력인 외국인들이 과연 베트남 경제를 어떻게 진단하느냐에 따라 시장의 회복과 추락이 결정된다”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도 지역별 수요상황별 온도차가 크다. 호찌민시의 일반 신규 아파트 분양가는 최근 평균 30%하락했지만 ‘알짜배기’ 신규물량은 처음 분양가 보다 2배가량 오른 채 대기수요자가 줄을 서 있다. 포스코E&C가 운영하는 호찌민시 랜드마크(20층 규모)인 다이아몬드플라자의 사무실 임대료(30평기준)는 서울 도심보다 높은 월 8,000달러에 달할 정도다.
최근 호찌민시에 700세대의 고급아파트 블루밍파크의 모델하우스를 개관한 벽산건설의 정인섭 해외사업팀 상무는“한국을 포함해 외국 기업들의 투자진출이 급증하고 있는 하노이나 호찌민시의 경우 국제적인 생활수준에 맞는 살만한 집이 없다고 할 정도로 이곳의 고급 아파트 분양열기는 아직도 식지 않고 전망 역시 밝다”고 말했다.
■위기는 기회
국내에서 베트남의 외환위기에 대한 우려감과는 달리 현지 진출 우리 기업들은 위기를 기회로 보고 사업확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단기적인 악재에 전전긍긍하기 보다는 장기적인 투자 수익률이 더 클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포스코 건설은 하노이 인근 안카잉 지역에 인천 송도와 같은 신도시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는 호찌민시 심장부에 주상복합건물인 아시아나 플라자를 현재 건설중이다. 포스코는 베트남 남부 붕따오 지역에 연산 120만 톤규모의 냉연공장을 내년 10월 완공할 계획인데 호치민 인근에 2차 고로시설 계획도 준비 중이다.
금호타이어는 호찌민에 공장을 완공했고, 효성도 스판덱스와 타이어 코드 생산공장을 완공했다. 두산중공업은 중부인 다낭지역에 철구조물 제품 생산공장을 이전할 계획이다. 파이프를 만드는 세아철강도 사업확장을 서두르고 있다.
유성룡 베트남하노이대사관 건교관은 “중장기적으로 현지 한계기업의 구조조정이나 정부지분 매각에 따른 신규 기업인수합병(M&A)과 부동산 등 자산매입은 지금?절호의 기회”라고 강조했다. 김인상 벽산건설 사장은 “이번 위기를 잘 넘기고 나면 베트남 경제는 한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고 허브 고크란 암참베트남 대표는 “미국은 물론 한국 등 외국기업들의 장기 투자는 지금이 적기”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호찌민(베트남)=장학만 기자 loca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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