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어제 당정회의를 거쳐 미국산 쇠고기의 새 수입위생조건을 담은 장관고시 발표를 강행했다. 미국과의 추가협의를 통해 얻어낸 조건이 광우병 위험을 걱정하는 국민들의 요구에 못 미치는 것을 알지만, 대안 없이 고시를 마냥 늦출 경우 실익도 없이 국가 신인도만 떨어뜨린다는 판단에서다.
이로써 이르면 내주 초 검역이 재개되고 6월 중순이면 미국 쇠고기가 다시 시중에 유통될 전망이다. 그러나 정부가 국민 불안보다 미국과의 관계를 앞세우고, 정권의 도덕성 문제로 비화된 사안에서 이해와 공감을 구하는 작업을 너무 빨리 포기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고시 발표를 강행한 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졸속 본협상에 대한 국민적 공분을 이유로 미국측의 양해를 구해 광우병 발생시 수입중단 권리와 특정 위험물질 기준의 강화등을 얻어냈고, 미국 도축장의 위생ㆍ검역 상황도 점검했으며, 수입위생조건 입안예고 등을 통해 여론 수렴도 할 만큼 했다는 것이다. 더 한다면 결국 재협상인데, 국제협상 관례나 성과 측면에서 이를 밀어붙이기 어려운 현실이다. 한나라당이 민심의 동향을 우려하면서도 정부 손을 들어준 배경엔 이런 고심이 깔려 있다.
그러나 이 논란은 이미 광우병 위험에 대한 과학적 토론 차원을 넘어 정부의 도덕성과 신뢰성 문제로 비화했다.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을 극소화하는 모든 조치를 취했다”는 말만으로 국민감정을 달랠 수 없다는 뜻이다. 필리핀 등도 금지한 30개월령을 넘는 쇠고기 수입을 허용한 이유는 여전히 구차하고, 30개월령 미만 쇠고기의 특정 위험물질을 2개로만 한정한 배경은 더욱 불투명하다.
그런데도 검역과 유통의 철저한 관리만 강조한 것은 참으로 물정 모르는 행태다. 현 단계에선 우리의 잘못을 180도 뒤집기 어려워 일단 고시는 하지만 추가 협상이나 협의를 계속해 우려사항을 해소하겠다는 정도의 예의도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시민 불복종 투쟁’이라는 말이나 야당의 장외투쟁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성적 토론과 실리적 접근이 필요한 곳에 강퍅한 투쟁논리가 지배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지혜롭게 구하면 답이 없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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